상단영역

실시간뉴스
편집 : 2024-04-26 19:24 (금)

본문영역

  • 인물
  • 입력 2023.08.12 17:42
  • 수정 2023.09.25 17:23
  • 호수 1467

잊혀진 영웅, 어느 참전용사의 일기④ 합덕읍 운산리 최영석 옹
“전쟁 중 태어난 딸이 올해로 72세”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해병대 입대해 연평도·백령도서 복무
백마고지 전투 지원 전 휴가 받아 살아
지도 펴고 땅 넓어 보이는 ‘합덕’으로 이주

 

<편집자주>

70년 전, 사선을 넘나드는 전쟁에 나가 목숨 바쳐 싸우고 고향으로 귀환한 당진의 참전유공자들. 1950년 전쟁 당시 스무 살 무렵이었던 참전용사들의 나이는 이제 아흔이 넘었다. 나라를 위해 전선에 뛰어들었지만, 세월의 흐름에 따라 그들의 희생도 점점 잊히고 있다. 2500여 명이었던 당진 참전용사 중 2200여 명이 이미 세상을 떠났다. 생의 끝자락에서 회고하는 전쟁의 참상을 기사와 다큐멘터리 형식의 영상으로 제작한다. 대한민국 6.25 참전유공자회 당진시지회를 통해 추천받은 6명의 참전용사의 삶을 오는 11월까지 기록해 나갈 예정이다. 영상은 유튜브 ‘당진방송’을 통해 볼 수 있다.

최영석 참전유공자
최영석 참전유공자

 

합덕읍 운산리에 사는 최영석 옹은 강원도 영월의 산 중에서도 제일 높은 산 중턱에서 태어났다. 최 옹에 따르면 8부 능선보다도 더 되는 곳이었다고. 이곳에서 나고 자란 최 옹은 “하늘과 맞닿은 곳에서 태어나 사는 데 하늘이 많이 도와줬다”고 말한다. 그 덕이었을까. 생(生)과 사(死)가 오가는 전장 속에서도 죽음이 빗겨 나갔다. 때로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면서 무사히 전역 이를 수 있었다. 1930년에 태어난 최 옹의 올해 나이는 90살 중반에 이르렀다. 70년도 더 된 과거가 지금은 기억 속에서 많이 희미해졌다. 켜켜이 묻은 기억을 오랜만에 꺼내봤다.

전쟁 중 해병대 입대

최 옹은 1952년에 입대했다. 한참 6.25 전쟁이 벌어질 때였다. 원래 입대 시기보다는 조금 늦어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단다. 아직도 입대하던 그 시기의 기억이 최 옹의 머릿속에 남아 있다. 그는 “1952년 정월이 입대하던 날이었다”며 회상했다. 이어 “정월이라 큰집을 가려는데, 당시에 한참 전쟁 중이라서 입대를 하지 않고 도망가는 사람이 많으니 경찰이 큰집 가는 나를 따라왔다”고 떠올렸다. 해병대에 입대한 최 씨는 처음엔 최전방인 백령도에 배치됐다. 하지만 오래 지나지 않아 연평도로 재배치 됐다고. 그는 “나중이 들은 이야기인데, 나와 교체돼 백령도에 간 군인이지뢰를 밟아 사망했다고 한다”고 말했다. 

전역증서
전역증서
전역증서
전역증서

 

해병대에서 전투 지원까지

전쟁 막바지에 이르렀을 무렵, 그 역시 전방으로 다시 배치됐다. 판문점 뒤쪽에 위치했던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장단리의 박격포 부대에 간 그의 일은 포탄에 탄약을 넣는 것이었다. 앞서 사수가 탄약의 양을 말하면 여기에 맞춰 지원하는 일을 했다. 그는 “박격포 부대에 있어 격전지와는 거리가 있었다”며 “그래서 죽지 않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참혹한 전쟁 속에서 죽음은 늘 곁에 있었다. 그와 함께 배치됐던 전우 역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야 했고, 죽어서 손과 발이 경직된 사람들의 시체도 목도해야만 했다. 

“나하고 군대 갔던 사람들 다 죽었지. 나보다 7~8살 어린 애들도 죽었어. 강원도 사람은 더욱이 먹을 게 없어서 그랬던 건지, 다 금방 죽더라고.”

 

“백마고지 전투 나갔더라면…”

강원도 철원 서북방에 있는 백마고지에서 한국군, 미군, 중공군이 맞붙었다. 이 전투는 휴전회담이 교착상태에 빠져들고 1952년 10월 초 판문점에서 포로회담이 해결되지 않자 중공군의 공세로 시작된 그 해의 대표적인 고지 쟁탈전이었다. 격한 전투에서 육군이 해병대에게 지원을 요청했다. 그때 차출됐어야 했지만, 위에서 한 달 휴가를 줄테니 집에 다녀오라는 이야길 들었단다. 휴가를 갔다 다시 복귀하니 이미 휴전한 상태였다고. 그는 “운이 좋았던 건지, 그때 한 달 휴가를 줘서 살 수 있었다”며 “만약 백마고지 전투에 나갔다면 죽을 수도 있었다”고 말했다. 

“하늘과 바로 아래 산 중턱에서 태어나서 그랬던 건지, 하늘이 도와준 것인지 저는 살았죠. 제가 운이 좋아요. 집에 나갈 땐 비가 오지 않다가, 일 마치고 집에 오면 비가 쏟아지는 날도 있고, 지금까지도 건강해요. 전쟁 때도 여러 사람이 도와주고, 운도 좋아 살 수 있었어요.”

전쟁 중 태어난 딸이 올해 72세

한편 최 옹은 18세 나이로 일찍이 결혼했다. 그가 입대할 당시 아내가 딸을 임신하고 있었단다. 5개월 후, 딸이 태어났다는 소식을 군대에서 들을 수 있었다. 그는 “그 딸이 올해로 72세”라고 말했다. 제대하고 나서는 다시 강원도에서 머물렀다. 하지만 집을 이사해야 할 상황에 놓였고 그때 그가 한 행동은 지도를 펼치는 것이었다. 전국 지도를 넓게 펼친 그는 땅이 넓은 곳부터 찾았다. 그때 눈에 들어온 곳이 예당평야였고, 바로 짐을 싸서 지금 사는 합덕읍으로 오게 됐다. 그는 “전국 지도 중에 당진 땅이 가장 넓어 보이더라”며 “여기 오면 먹고 살 순 있겠다 싶었다”고 말했다. 

한 권의 책에 인생 담겨

글을 읽을 수 있었던 최 옹은 다른 유공자를 돕기도 했다. 젊은 시절 목숨을 바쳐가며 전쟁에 참전했지만, 글을 몰라 유공자로 인정 받지 못했던 사람이 여럿이었다. 최 옹은 그런 사람들을 찾아 보훈청까지 같이 오가며 유공자 등록을 도왔다. 그는 “한 10명은 보훈청에 데리고 가서 유공자로 인정 받을 수 있게 했다”고 말했다. 더불어 그는 합덕읍행정복지센터에서 청소 일을 하면서 종종 봉사에도 나섰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 받으며 표창까지도 받았다고. 

이외에도 지난 젊은 날의 역사를 한 권의 책으로 만들기도 했다. 그는 “상 받은 것이나 혹은 신문에 있는 시조를 모아 책으로 만들어서 주변에 선물해주곤 했다”며 자신이 만든 책을 펼쳐보면서 지난 삶을 회고했다.

 

저작권자 © 당진시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5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