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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획
  • 입력 2008.05.05 00:00
  • 호수 709

[우리고장의 전설을 찾아서 ④ ‘칠성바위’ 고대면 슬항리] 칠성바위의 정기받아 자식이 많은 슬항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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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 주
 오래 전부터 각 마을마다 구전으로 내려오는 전설들이 있다. 우물에 얽힌 이야기, 오래된 나무나 바위에 얽힌 사연들, 이런 이야기들은 우리 현대인들에게 그리 낯선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나 전설이나 설화를 담고 있는 향토문화자원들이 개발의 와중에서 사라지거나 잊혀져가고 있다. 본지는 지난해 8회에 걸친 ‘우리 지역의 전설’ 1차 연재에 이어 제2차 기획취재를 통해 지역의 전설을 찾아  향토문화의 보존을 도모하고자 한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아 이뤄졌습니다.

칠남매를 둔 김동군(73)씨와 아들 오형제에 딸 하나를 둔 김윤성(75)씨.
지난 29일 고대면 슬항2리 노인정에서 만난 김동군씨를 비롯해 김윤성·조문행(74)·노숙근(73)·원용국(63)·신양균씨 등은 슬하에 오남매 이상씩을 두고 있었다.
이날 마을 주민들이 홍도로 나들이를 갔지만 농사일 때문이거나 몸이 불편해 나들이에 참석하지 못했다는 이들은 노인정에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김동군씨에 따르면 마을 주민들 대부분이 자식들이 많다고 했다.
“요즘 젊은 세대들이야 애를 하나둘 낳지만 옛날에는 많이 낳았지. 그러다 보니 오남매는 기본이여”
부부금술이 좋아서라고 웃으며 말하지만 뭔가 다른 이유가 있을 듯했다. 전쟁과 산업화를 겪은 세대들이 자식을 많이 두기는 하지만 말이다.
노인정에서 만난 마을주민들은 슬항리가 인심좋고 살기좋은 조그만 어촌마을이었다고 말했다.
“석문간척지 공사로 바닷물이 막히기 전에는 바닷물이 들어왔어. 마을사람들 대부분이 어업에 종사하며 먹고 사는데 걱정이 없었지. 바다에 나는 것도 풍부해서 사람들 모두가 풍족하게 살았어. 그래서인지 부부금슬도 좋았고 자식들도 많이 뒀지.”
또 하나의 이유는 바로 칠성바위 때문일 것이라는 말도 했다.
칠성바위의 정기를 받아 마을주민들이 아들도 많이 낳고 자식을 많이 두게 되었다는 것. 칠성바위에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을 보면 마을주민들의 주장이 틀리지만은 않은 듯 했다. 마을주민들에 따르면 칠성바위에 치성을 드리면 자식을 얻을 수 있다고 했다.
현재 칠성바위 중 하나만 원석이 남아 있을 뿐이지만 오래전 칠성바위에 치성을 드리는 이들의 모습을 많이 볼수 있었다고 한다.
칠성바위에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에 따르면 옛날 한 원님이 마흔이 넘도록 자식없었다고 한다. 그는 좋은 곳을 찾아 다니며 자식없는 쓸쓸함을 달래곤 했는데 어느날 슬항리 바닷가 경치 좋은 곳에 우뚝 솟아 있는 바위들이 있었는데 마치 아들들이 서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원님은 자식이 없음을 한탄하며 이곳에 며칠간 묵으며 일곱 개 바위에 아들을 낳게 해달라고 치성을 드렸다고 한다. 치성을 드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부인에게 태기가 있었으며 아들을 낳았고 그렇게 칠형제를 낳았다고 한다. 그 후 원님은 순조롭게 큰벼슬까지 지냈고 아들들도 과거에 급제해 벼슬길에 올랐다고 한다.
이처럼 칠성바위에 얽힌 전설 때문인지 자식이 없는 사람들이 슬항리마을에 수없이 몰려 왔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도 매년 음력 정월보름이면 전날부터 사흘간 오곡밥과 흰떡, 나물들을 정성스럽게 차려 칠성바위에 바치고 제를 지냈고 전국의 거지들이 몰려와 며칠씩 묵어가면서 얻어먹고 갔다고 한다.

칠성바위는 1936년 신작로 개설과 1994년 도로 확포장공사로 없어졌는데 그중 하나를 마을 주민이 보관하고 있었다고 한다.
마을주민들은 지난해 칠성바위 중 하나 남은 그 원석을 마을 경로당 입구에 설치했다.
칠성바위가 있던 터 바로 옆에 집을 짓고 살고 있는 김동군씨는 도로가 나면서 집이 헐려 지금의 자리로 집을 지어 이사왔다고 한다.
어려서 부모님을 따라 슬항리로 이사왔다는 김씨는 선무당들이 칠성바위에 제를 지내거나 아들을 낳게 해달라고 빌러 오는 이들을 많이 봤다고 한다.
노숙근씨는 원래 고향이 슬항리는 아니지만 사촌들이 살고 있어 어려서부터 슬항리에 자주 왔다고 했다.
그는 “제를 지내고 나면 떡이며 음식이 많이 남아있었는데 사촌들하고 몰래 주워 먹기도 했다”며 “이곳 칠성바위에서 자주 놀았다”고 말했다.
육남매를 두고 있는 김윤성씨는 “옛날 바닷물이 막히기전 슬항리는 바닷가였다”며 “젊었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바다에 나가 뱃일을 하며 고기도 잡고 했다”고 회상했다.
“선장도 한 10여년 했지. 고기들도 많이 잡혀서 풍족하게 살았는데... 지금은 바다가 막혀서 옛날 생각만 나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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