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가~ 부서지는~~ 바~~위섬~~”매주 수요일 당진시장애인복지관에서는 아직은 엉성하지만 부르는 이들의 마음이 전해지는 노래 소리가 들린다. 노래를 통해 삶을 보다 풍성하게 만들기 위해 지적장애 및 지체장애, 뇌병변장애를 가진 이들이 모였다. 한 시간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이뤄지는 교육이지만 단원들 서로가 유익한 시간을 즐기기 위해 항
읍성이란 지역민을 보호하고 지역의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지 역할과 함께 군사적, 행정적 기능을 수행하던 공간이다. 그렇기에 읍성은 그 지역에 대한 문화와 역사를 이해하는 귀중한 자료라 할 수 있다. 읍성은 지형이 험준하면서도 입지가 넓고 평평한 곳 중 물이 풍부하고 교통이 편리하며 땅이 비옥한 지역에 축성된 경우가 많았다.읍성의 본격적인 축조시기는 고려 말엽부터라 알려져 있다. 고려 말부터 조선조까지 이어진 왜구의 칩입에 심각한 피해가 생겼던 시기로 읍성의 역할은 지역의 행정을 담당하는 것과 동시에 왜구로부터 백성들을 지키기 위한
휴가철을 맞아 여름 더위를 피해 해수욕장이나 계곡으로 떠나는 이들이 많다. 피서지를 찾는 사람들에게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편안히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소난지도를 추천한다.도비도 선착장에서 대난지도로 향하는 배를 타고 10분쯤 가다보면 소난지도에 다다른다. 소난지도는 바닷바람을 맞으며 산책을 즐길 수 있는 200m 가량의 백사장과 물놀이를 즐기고 싶어하는
특화시장으로 시장환경 개선경기 시흥시 신천동에 위치한 삼미시장은 시흥시의 대표적인 재래시장이다. 1988년 삼미종합상가라는 명칭으로 4개의 동이 있는 시장으로 설립됐다. 시흥시는 2005년 8억여 원을 투입해 삼미시장을 현대식으로 재개발했고 현재 삼미시장은 약 145개의 점포가 등록돼 있다.삼미시장은 옛부터 ‘뱀내장터’라는 이름으로 불
“거산(巨山)이라는 마을 이름처럼 산 같은 아파트가 많이 생겨나고 동네가 점점 커지고 있나벼~”삽교천 방조제 건설과 서해대교 개통으로 교통의 요지가 된 거산2리는 꾸준히 인구가 늘고 있는 마을 중 하나다.마을에만 9개의 아파트가 있을 정도로 도시화 마을의 면모를 볼 수 있다. 거산2리는 당진과 합덕에서 신평면으로 들어가는 관문이자, 수도권과 접근성이 편리한 곳이어서 젊은 세대가 많이 이주해 오고 있다.하지만 마을에서 터를 닦고 살아온 주민들과 이주민 간의 벽이 높아 어려움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인영 부녀회장은 “마을주민은 많지만
당진극장 옆 한복집 아들 이태리 유학 뒤 나무 조각길로 그는 염소다. 멋지게 기른 턱수염이 염소를 닮기도 했지만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염소의 느낌이 더 그랬다. 초지에서 혹은 논두렁에서 풀을 뜯는 염소는 얼마나 평화로운가. “메에~” 우는 울음소리는 개나 닭의 소리처럼 요란하지 않다. 연약한 듯 보이지만 조용히 제 길을 가는 염소가 마
신촌초등학교(교장 박란수)는 이른 아침 7시 30분부터 늦은 오후 9시까지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학생 46명에 교원 15명(유치부 5명, 유치부교사 1명 포함)의 작은 학교지만 그만큼 학생들에게 맞춘 개별교육이 가능하다. 교실 구석구석에는 아이들이 만든 공예 작품들이 있고 밖에는 손수 기르는 방울토마토들이 심어져 있다. 벤치 위에는 가방이 놓여 있는데
당진 종합버스터미널 앞 상권(일명 신터미널)은 저녁이면 사람들의 발길로 북적이고 건물들은 휘황찬란한 네온사인으로 밤거리를 비춘다. 상가 내에 마련된 주차장을 비롯해 인근 도로변에는 차량을 주차할 곳이 없어 당진중앙2로 도로 중앙선에까지 차량을 주차할 정도다. 여름철이 되면서 상가 테라스에서 시원하게 맥주잔을 기울이는 사람들의 모습도 흔하게 볼 수 있다. 북
축구공으로 체력증진과 재미 그리고 축구인 간의 소통을 이끌어 내는 축구클럽 ‘소울’은 20~30대 회원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는 생기 있는 클럽이다.당진사랑축구리그에 참가 중인 각 팀에 소속된 젊은 선수들이 모여 활동 중인 이곳은 매주 수요일과 주말을 이용해 연습게임을 진행하고 있다. 특히 31명의 회원들로 구성된 소울은 서울, 인천 지
천주교는 임진왜란 때 학문으로 우리나라에 들어와 1784년 경에 종교로써 자리했다. 천주교가 종교로 자리 잡아 오기까지 온갖 박해와 수많은 순교자들이 있었다. 특히 조선 말엽에 일어난 4대 박해(신유박해, 병오박해, 기해박해, 병인박해)는 천주교 신자 1만 여명의 목숨을 앗아갔다.당진시에는 대표적인 세 곳의 순례 성지가 있다. 합덕에 자리한 합덕성당과 신리성지 그리고 우강면에 자리한 솔뫼성지이다.합덕에 위치한 신리성지는 충남도 기념물 176호로 지정돼 있는 성지다. 천주교 박해 시기에 신리는 조선에서 가장 큰 교우 마을로 알려져 있
어르신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내려 오는 옛 이야기가 넘쳐난다. 유서 깊은 고찰이 마을의 역사와 문화, 생활의 중심이다 보니, 절을 둘러싼 전설이 많다. 면천면 성하리 주민들에게 영탑사는 든든한 마음의 안식처이자 경외의 대상이다. 면천이 지역의 중심지로 읍성을 축조했을 당시 성(城)의 아랫마을이어서 성하리(城下里)로 불리기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면사무소 소재
순성초등학교(교장 유인종)는 전교생이 가야금을 배울수 있는 학교다. 지난 2009년부터 돌봄학교로 지정돼 다양한 체험 학습과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순성초는 지원예산을 통해 가야금 20대를 구입해 수업을 진행해 온 지 벌써 4년째를 맞고 있다. 학생들의 음악적 특기와 소질을 계발하고 올바른 인성을 함양하기 위해 시작한 가야금 수업은 어느 덧 순성초의 자랑
영탑사 내에 있는 문화재들에 비해 영탑사는 창건시기가 정확치 않다. 현재는 신라 말 도선 국사가 창건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영탑사는 당진 내에서도 영랑사와 더불어 가장 오래된 사찰 중 하나다. 그만큼 보존하고 있는 문화재들은 오랜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금동비로자나불삼존좌상은 영탑사 법당 내에 자리한 불상이다. 중앙에는 비로자나불상이 있고, 그 좌우로 협시불상이 세워져 있다. 이 세 불상은 얼굴이 네모지며 볼에 살이 많고 가늘게 내려 뜬 눈과 미소를 머금은 작은 입이 특징이다. 이 불상들은 고려 불상들의 특징을 알
지형이 왜가리의 목처럼 가늘게 생겨 이름 붙은 왜목마을은 해가 뜨는 서해안 마을으로 유명하다. 지형의 특성상 동쪽으로 형성된 해변 때문에 서해안임에도 불구하고 이곳에서는 해돋이를 볼 수 있어 새해 첫 날은 물론 수많은 관광객이 이곳을 찾고 있다.왜목마을의 바다는 맑고 깨끗하기로도 유명하다. 검은 갯벌보다 모래가 많아 물빛이 맑다. 크고 넓지는 않지만 아기자기한 아름다움이 있는 모래사장은 일광욕을 즐기기에 좋다. 특히 하루에 두 차례씩 바닷물이 빠지면 호미와 자루를 들고 나와 바지락을 캘 수도 있다.파도가 높지 않고 완만한 경사에 수
“15년 전만해도 가족단위로 재래시장을 찾아 외식도 하고 쇼핑도 했지만 지금은 그런 모습을 보기 어려워요” 지난 7일 동경 우에노에 있는 아메요코재래시장에서 만난 후카자와 씨는 첫 인사를 그렇게 시작했다. 그는 18세부터 41년간 조개류를 판매하고 있다고 했다. 후카자와 씨의 말에서 묻어나듯 15년 전부터 시작된 경제 불황과 계속되는
한국 러시아문학의 길을 연 이항재 교수는 고대면 선교리(현 장항리) 출신이다. 마을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등불을 켜고 중학교 입시공부를 하던 시절, 5월이면 친구들과 갯가에서 망둥이를 잡고 놀았다. 고무신을 신고 다니던 까까머리 시골소년이 어느덧 60세를 바라보며 인생의 또 다른 문턱 앞에 섰다. 번역 및 출판서적 40권고등학생 때 서울로 유학을 떠난 이
북창초등학교는 지난 2006년 폐교 위기에 놓여 있었다. 줄어가는 학생 수와 늘지 않는 입학생 수, 적은 지원이라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북창초는 위기를 딛고 재도약을 시작했다.김낙교 교감은 “2012~13년이 학교에겐 전환점이 된 시점”이라며 “그 때부터 학생 수가 늘어나기 시작하고 교장을 중심으로 교사들이 단합해 좋은 학교
정미면에 위치한 안국사지에는 배바위라 불리는 매향암각과 석조여래삼존입상, 그리고 석탑이 있다. 이들은 모두 고려 후기에 세워졌다고 추정만 하고 있을 뿐 자세한 기록도, 유래도 전해지지 않고 있다. 이밖에도 고려 후기 이민족의 잦은 침략으로 불안해진 민심을 달래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매향암각은 형태가 배모양과 같아 배바위라고 불리기도 하고 고래모양과 닮아 고래바위로도 불린다. 자연석의 통바위인 매향암각은 높이 2.93m, 길이 13.35m, 폭 2.5m를 자랑하는 거대한 바위다.매향이란 내세의 복을 빌거나 마을에 화가 닥쳤
당진 지명의 유래가 된 마을이 있다. 바로 당진포리가 그곳이다. 중국 산둥반도와 매우 가까운 지리적 여건으로 인해 일찍이 당나라와 교역이 활발했던 지역으로 ‘당나라와 교역한 나루(포구)’라는 뜻에서 당나루, 즉 ‘당진포(唐津浦)’라 불렸다. 해안가 근처에 당진포영(領, 군대)이 주둔해 있었는데 이 앞에 위치한 마을이어서 영전(領前)이라 불렸다.“어렸을 때 만해도 ‘영 앞’이라는 말을 쓰곤 했었어요. 친구들을 만날 때 ‘영 앞에서 만나자’라고 말했죠.” (최종웅 이장)당진포1리는 몇 해 전 농촌체험마을을 조성하기 시작하면서 ‘영전황토
현재 면천초등학교 내에 자리한 면천 은행나무는 무려 천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그 뒤에는 술을 빚기 위해 물을 길었던 안샘이 있으며, 안샘의 물을 길어 만든 면천 두견주는 대표상품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려를 세운 개국공신 중 한명인 복지겸 장군은 병을 얻어 고향인 면천 땅에 낙향해 있었다. 그의 딸 영랑이 아버지의 병수발을 도왔으나 차도가 없어 아버지의 쾌차를 빌고자 아미산(현 면천면 소재)에 올라 백일기도를 드렸다.백일 째 되던 날 영랑의 꿈에 신령이 나타나 “아비의 병을 낫게 하고 싶으면 아미산에 만개한 두견화(진달래꽃)의 꽃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