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들리지 않고, 말을 능숙하게 하지 못해도 아이들은 누구보다 자신의 꿈을 선명하게 그려나가고 있다. 바리스타도 되고 싶고 사회복지사도 되고 싶다. 무엇보다도 차별 없는 세상, 장애인들이 살기 좋은 세상을 꿈꾼다. 저 마다 꿈도 생각도 다른 아이들이 용기를 내 무대에 올랐다. 자신의 생각을 또박 또박 사람들에게 전했다. 정하늘(천의초2)“마트 주
수질오염총량제 시행이 미뤄지고 있는 가운데 삽교호수질오염이 심각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관해 맑고푸른당진21 실천협의회 주최로 삽교호 물 관리 정책토론회가 지난달 13일 개최됐다. 당진시청 중회의실에서 열린 이번 토론회에는 김영일 충남발전연구원 책임연구원이 발제자로 나서‘삽교호수계 수질개선을 위한 수질오염총량관리제 도입방안’을 비롯해
행정구역 상으로는 점원리이지만 오랜 시간 동안 자연부락으로 마을을 이루며 살아온 상궁원리는 예부터 메기가 많이 잡히기로 유명한 곳이었다. 동쪽으로 삽교천의 줄기인 석우천이 흐르는 곳으로 언(堰, 방죽·둑)을 쌓아 마을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메기언(메기원)’으로 불렸다. 삽교천방조제가 막히기 전엔 메기는 물론 붕어 등의 여러
6.25 전쟁 당시 머리에 총을 맞아 탄환이 박힌 채 살아온 이문영(85) 할아버지. 두통에 시달리며 평생 진통제에 의지하며 살아온 할아버지는 최근 충북 한 요양원으로 거처를 옮겼다. 얼마 전까지 송악 실버프리 요양원에 계시다가 가족의 뜻에 따라 공기 좋은 곳으로 요양을 떠났다. 아들 이 모씨는 “(아버지가) 연로해 지시면서 거동도 불편하고 기억
당진에 오래전부터 살아온 사람이라면 할머니야식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허름하고 낡은 가게였지만 할머니의 따뜻한 손맛은 많은 이들의 발길을 붙잡았다. 할머니야식을 운영하던 고을님 할머니는 현재 경북 안동에서 딸과 함께 지내고 있다. 암 수술을 받은 이후 줄곧 딸과 함께 살면서 여생을 보내고 있다고. 어느덧 여든이 된 고을님 할머니는 “몸이 아파
“의사가 돼서 엄마를 고쳐주겠다”던 중학생 소녀 영심이가 꿈에 한발자국 다가가 결국엔 간호사가 됐다. 본지에 보도된 지 어느덧 10년이 지났으니 이제 스물여섯 아가씨다. 수소문 끝에 연락이 닿은 영심 씨 어머니 이순옥(순성면 양유리·60) 씨는 영심 씨가 “서울 강동성심병원에서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낡은 자전거에 뽀얗게 먼지가 내려앉았다. 손잡이와 바퀴에는 거미줄이 끼어 할아버지가 꽤 오래전부터 자전거를 타지 못했다는 것을 말하고 있었다. 지난 2010년 당진시대가 이시용(102) 할아버지를 다시 만났을 때만 해도 할아버지는 백수(白壽)의 나이에 여전히 자전거를 타고 마실을 다녔다. 13살부터 탔으니 무려 86년 동안 자전거는 할아버지의 발이 돼왔다.
늠름한 청년으로 살았던 날보다 이제 장애인으로 살아온 날이 더 많아졌다. 교통사고로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었던 스물 두 살의 청년이 어느덧 쉰 살의 아저씨가 됐다. 허성무 씨는 식물인간으로 5년을 살았다. 기적처럼 그가 눈을 떴을 때 살아 있다는 걸 부정하고 싶을 만큼 머리에 인 하늘이 너무나 무거웠다. 목발 없인 걷지 못했고, 말 한마디를 꺼내기 위해선 모
김충환(60) 씨가 차를 타고 나타나면 한류스타 부럽지 않은 관심을 받는다. 어딜 가나 사람들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면서 그에게 모여 든다. 그를 스타로 만들어 주는 건 다름 아닌 바로 30년 된 자동차 ‘포니2 픽업’이다. ‘설마 벌써 팔았겠지…’하는 마음으로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제가
런던 청년 닉(34)은 호주에서 유학생활을 하면서 한국인 친구를 사귀게 된 것이 한국과의 첫 인연이었다. 유학생활을 끝내고 한국인 친구와 3주간 한국을 여행하면서 한국, 전통에 대한 아름다움을 느끼고 이곳에 정착하기로 마음 먹었다. 경기도 용인에서 학원 강사로 활동하다가 외국어 교사를 시작하면서 당진에 발령받아 온지 1년째다. 친구 통해 알게된 한국처음 당
겹겹이 둘러싼 산과 언덕들 사이에 위치한 대치리는 아늑하고 조용한 마을이다. ‘큰 고개’라는 뜻의 대치리에는 한티고개가 자리잡고 있다. 도로가 생기기 전에는 한티고개를 넘어야만 면천면 중심지로 갈 수 있었다고 한다.대치리의 남쪽으로는 오봉산이, 북쪽으로는 옥녀봉이 위치해 있고 마을 가운데로 작은 개울이 흐른다. 산간 지역이다 보니 수도작 농사 보다는 밭농사가 더 많이 이뤄지고 있다. 특히 꽈리고추나 블루베리를 비롯해 원예특작이 많이 재배되고 있어 경지면적은 다른 지역에 비해 좁지만 농가 소득은 꽤 좋은 편이다. 마을에 저수지가 없어
예부터 ‘마섬포구’라 불리던 장고항1리는 당진의 여러 포구 중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조용한 어촌마을이다. 하지만 최근 송산면 가곡2리 성구미포구 어민들이 현대제철 사유지에서 생업을 이어오다 마섬포구에 자리 잡으면서 새롭게 조명 받고 있다. 소와 말 닮은 두 개의 섬 나란히 소와 말이 얽혀있는 형상이라는 마섬은 ‘소마’라 불리기도 하고, 두 섬이 나란히 있어 ‘쌍섬’이라고 불린다. 마섬은 밀물이 들어오면 섬이 됐다가 물이 빠져나가면 육지와 연결된다. 포구에서도 무척 가까워 갯벌에서 조개를 잡다 보면 어느새 섬까지 다다른다.“장고항이
삽교천을 사이에 두고 당진과 아산의 경계에 있는 신당리는 평지가 대부분인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방조제가 건설되기 전에는 바닷물이 드나들어 풍성한 어장을 자랑했지만 지금은 너른 들에서 생산되는 해나루쌀로 유명한 곳이 됐다. “바지락과 대합 등 조개는 물론이고 게, 망둥어 등 여러 종류의 해산물이 잡혔죠. 갯벌과 바다, 그리고 민물이 만나는 황금어장이었어요.” (정경채 이장)남원포와 인천을 오가는 배도 들락거렸다. 삽교천방조제를 쌓음으로 인해 예전만큼 많은 물고기들을 찾아보기 힘들지만 물 걱정 하나는 사라졌단다. 지금은 물이 항상 풍
제주도 사람들 조차 어딘지 몰랐을 정도로 인지도가 낮았던 제주시 한경면 낙천리. 하지만 지금의 낙천리는 지나가던 올레꾼들과 멀리서 찾아오는 관광객들로 시끌벅적한 동네로 거듭났다. 즐겁게 쉴 수 있는 1000개 의자2003년 낙천리가 전통체험마을로 지정이 되면서 주민들이 모여 머리를 맞댔다. 마을사람들의 고민은 한 가지였다. “어떻게 하면 낙천리를
농번기를 맞아 대부분의 농촌마을이 가을걷이로 분주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가운데 도시화가 이뤄진 마을들은 비교적 여유 있는 분위기다. 읍내7통은 목화아파트와 푸른병원 일대의 지역으로 도시화가 꽤 오래전에 이뤄진 마을이다. 이주민이 많아 마을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를 찾기 어렵고, 구전으로 전해 내려오는 마을의 유래와 옛이야기는 농촌과는 다르게 매우 흐릿하게 남
워커즈 컬렉티브 본은 생활협동조합 조직으로서 농촌 지역 주부들이 지역 내에서 자발적으로 만들어 운영하는 소규모 로컬푸드 식품 가공공장이다. 워커즈 컬렉티브 본은 도쿄도 마치다시의 워커즈 컬렉티브 설명회에 참가한 주부 조합원들의 생활클럽 생활협동조합 활동으로 1989년 탄생했다. 뜻을 같이하는 주부 조합원들이 조그마한 공간을 빌려 지역 농민들로부터 규격 외
충남 공주시 조용한 시골길을 따라 한참을 들어가니 봉현마을이라는 표지석이 보인다. 그 때부터 마을의 분위기가 새삼 다르게 다가온다. 은행나무를 옆에 끼고 한 쪽에는 넓고 한적한 논이 펼쳐져 있다. 조용하지만 아늑한 느낌의 마을이다.그 안에 충남교육연구소가 있다. 폐교였던 이곳이 지금은 사회적 기업으로 바삐 움직이는 충남교육연구소로 탈바꿈했다. 충남지역 교수
지난 5년간 당진시가 맺은 수의계약에서 당진시산림조합이 수주한 계약 건수와 금액이 압도적으로 높게 나타났다.본지가 당진시를 상대로한 정보공개청구 결과 당진시가 지난 2009년 1월7일부터 2013년 8월8일까지 5년 간 1319건의 수의계약을 288개 업체에서 체결한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적으로 1개 업체가 4.5건의 공사를 계약한 것으로 볼 수 있으나 실제 30건 이상 공사를 수주한 업체는 6개 업체인 반면 1건의 공사를 수주한 업체가 120개에 달해 특정업체에서 공사를 독점하는 사례가 발견됐다.당진시가 공개한 수의계약을 분석한
주민들에게 길을 거듭 물었지만 열이면 아홉 모른다며 손을 내저을 때마다 도심 속 공동체 와해가 와 닿는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마을을 일궈 나가는 작은 기업이 있다. 바로 서울시 은평구에 위치한 카페 ‘마을엔’이다. 그리 큰 규모는 아니지만 도서관, 카페, 바느질 공방 등 갖가지 작은 사업들을 펼치고 있다. 여성이 자립하는 장소은평구
“옛날에는 당진군이 아니라 봉천군이었지. 그때 당시 관아가 면천에 있었는데 한진하 옹이 돈을 많이 빌려줬었나봐. 그러고 대신 받은 것이 이 집이라지.”(박상진 씨)당시 한진하 옹(1880~1946)의 땅을 밟지 않고는 마을 어디를 다니지 못한다는 말이 있었을 정도로 그는 지역에서 이름난 부자였다. 우강면 원치리 모정마을에 위치한 이 가옥은 故 한갑동 시인이 소유하고 있다가 현재는 그의 맏아들인 한명우 선문대 교수가 물려받아 소유하고 있다. 집 관리는 박상진 씨 부부가 맡았다. 한갑동 가옥은 1993년 12월 충청남도문화재자료 제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