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미의 두 번 째 가족, 꽃집 아빠“복지사각지대 청소년 보듬어주길”Forget-me-not. ‘나를 잊지 말라’는 물망초의 꽃말이다. 송악읍 기지시리에 위치한 주플라워 박문수 대표는 “지역의 어려운 이웃을 잊지 말아 달라”고 말한다.본지 제1030호
본지 제911호 에 보도된 한강덕, 왕진리(시곡동) 부부의 생활은 여전히 행복하다. 중국에서 온 토끼 같은 아내 왕진리 씨와 아빠가 집에 오면 다시 못나가게 문 걸어 잠그는 6살 아들 재성이와 더불어 내년 4월이면 태어날 딸이 있어 한 대표는 ‘행복’의 의미를 몸소 느끼고 있다. 한강덕
신문 늦게 도착할 때 아쉬워오자 제보란에서 만난 사위 ‘반가움’안 볼 이유가 없다고 한다. 안 보면 궁금하고 제 때 도착하지 않으면 기다려지는 것이 란다. 신평면 거산리 류응열 씨의 아내는 “마누라는 안 챙겨도 신문은 챙긴다”고 말할 정도다. 류 씨는 10여 년동안 당진시대와 함께 했다. 그는
당진어린이집 김부영 원장은 한 평생 교육자의 길을 걸어왔다. 1958년 석문중학교 교사로 첫 재직해 석문중학교 교장, 충남도교육청 장학사, 송산중학교 교장, 당진고등학교 교장을 끝으로 1999년 정년퇴직했다. 퇴직 이후에도 “평생 해온 것이 교육”이기에 당진어린이집 원장으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 언제나 아이들과 함께한 그는 &ldq
미담사례로 기부문화 조성했으면힘들었던 시절, 고마운 아내와 친구미래싱크 김동율 대표의 기억을 되짚어 보면 두 명의 고마운 사람이 떠오른다. 먼저 젊은 나이에 김 대표를 만나 결혼한 아내 송길은 씨.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이곳에 시집와 시할아버지와 시할머니, 시아버지와 시어머니까지 모시면서도 큰 불평 불만 없이 살아온 아내에게 항상 감사하다는 김 대표다. 두
“이호천 선생님의 칼럼 는 이제 더 이상 안 나오나요? 저 완전 팬이거든요. 당진시대 신문만 오면 선생님 글을 보기 위해서 그 부분부터 펼쳐 읽었는데….”온누리 책방 홍명희 대표는 이호천 교사의 열성 팬이다. 2005년부터 2011년까지 ‘이호천의 교사일기’가 당진시대에 연재됐는데
“갈수록 어려워지는 농촌”당진, 공해 없는 도시돼야한참 깨를 털고 있던 고대면 계동길 손좌웅·김유환 부부.“옛날이나 지금이나 농작물 가격은 똑같지. 점점 농민들이 살기 어려워지는 것 같아.”옛날 어려운 시절에는 논 5000평만 가지고도 자식 대학까지 보냈는데 지금은 만평지어도 한 명 대학 보내기 쉽지
‘의리’ 지키며 침침한 눈에도 신문 읽는 노인“당진시대, 없어지면 안 돼”최익준 옹은 당진시대와의 ‘의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당진시대 경영이 적자가 아니라는 말에 안심하면서 “지역의 현안 사업들이 해결될 수 있도록 당진시대가 여론을 형성해 왔다”며 “당진시
시장서 35년 째 한복·이불집 운영지역 곳곳 발전·개발 소식 궁금“아줌마, 아저씨 아직도 있네”라는 말은 35년 간 당진시장에서 선경상회를 운영해 온 손한구·정은례 씨에게 가장 반가운 말이다. 또 버팀이 되는 말이기도 하다. 20여 년 전 까지만 해도 점심에 수저조차 들기 어려울 만큼 손님들이 북적
합덕, 학생 수 줄고 비행청소년 늘어 안타까워“청소년도 읽을 거리 많았으면”합덕청소년문화의집의 이영수 사무국장과 김수진 청소년지도사는 애독자다. 인천 출신인 이영수 사무국장은 5년 전 당진에 내려오며 당진 소식을 알 수 있는 당진시대를 접했다. 당진 출신인 김수진 지도사 또한 당진시대를 통해 많은 정보를 얻고 있
우강면 송산리 출신인 이진화 합덕지역아동센터장은 한 때는 유치원 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쳤다. 그 후 남편과 결혼하고 남편의 일을 도왔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하는 갈증이 남아 있었다. 가정상담소를 접하던 그는 복지에 대해 관심을 가졌고 대학원까지 등록했다. 대학원을 졸업하며 사회복지를 기여할 방안을 찾다 유치원 교사의 경험을 살려 지역아동
고대면 슬항리에서 태어나 슬항1리 이장 등을 맡으며 뚝심 있게 고향에서 살아 온 편영범 대표는 요즘 그와 꼭 닮은 손자 지우를 보는 재미에 산다. 그는 “고대면은 변화가 크지 않은 지역”이라며 “당진하고 가깝지만 상대적으로 발전이 더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고대면이 발전되길 바란다고 전했다.1994년도
1989년, 군대 제대 후 기술을 배우기 위해 온양에서 이주해 온 문형우 대표가 떠올리는 당진의 첫 인상은 “답답하다”는 것이 었다. 당시 온양은 시내버스가 밤 12시까지 다녔던 반면 당진은 8시만 돼도 사람은 커녕 차조차 다니지 않았단다. 당진에 내려온 5년 동안 무척 답답했다는 문 대표지만 지금은 어딜가서도 “당진이 최고
학교 소풍 철이 다가올 때면 저렴하게 캐주얼 옷을 판매했던 ‘시선집중’은 늘 학생들로 붐비곤 했다. 김연만 대표에 따르면 “당진 지역 중고생이라면 시선집중을 모르는 학생이 없었을 정도”였다고. 2004년, 시선집중을 운영했던 김 대표는 지인의 가게에 들렀다가 를 보고 내용이 알차다고 생각해 신
돋보기 없이는 글씨가 안보이고, 뒤 돌아 서면 금방 까먹는 나이라는 조영자(74) 씨. 그래도 그는 심심할 때마다 당진시대가 보이면 늘 신문을 읽는다고 한다. 율곡어린이집 이재상 원장의 어머니인 조영자 씨는 아들이 가져다주는 당진시대를 읽어 온 지도 벌써 6~7년이 지났다. 이제는 노쇠한 나이지만 그래도 그는 하루하루를 즐겁게 보내고 있다. 송산면은 당진
소방관 생활 8년 중 절반을 홍보 업무를 담당해 온 이향신 씨는 당진에서만 2년여 간 소방서 홍보 업무를 맡아 매일 한 시간씩 기사를 쓰고 지역 소식을 모니터링 해왔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당진시대와 인연을 맺게 됐다. 그는 “다른 전국·지방지보다도 지역신문은 내 얘기라는 생각이 든다”며 “당진시대는 지나가다 봤던
송악읍 가교리 출신인 이명휘 센터장은 기지초를 졸업하고 송악중을 다니다 서울로 이사를 가며 당진을 떠나 있었다. 이후 30년 만에 다시 당진을 찾아 2004년 공인중개사 사무실을 차렸다. 당진이 돌아가는 소식을 알기 위해서는 지역 신문이 필요했고 그렇게 당진시대를 접하게 됐다. 4개월 전 청구노인주간보호센터를 새롭게 문 열고 바쁘게 지내고 있는 그는 &ld
남부행복나눔복지센터 개소와 동시에 이곳에서 업무를 시작하며 통합사례관리를 맡고 있는 조수현 팀장은 벌써 센터와 함께한지도 5년째다. 현재 알콜통합지원사업을 맡고 있는 조 팀장은 “알콜의존증의 성공 사례는 드물다”며 “단순 집착을 넘어 단주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병”이라고 말했다. 현재까지 30여 명의 알콜의존자가
한 여름 뜨거운 열기만큼이나 당진시대에 애정을 갖고 있는 박상길·김순애 부부는 언제부터 당진시대를 구독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오랜 구독자다. 충남부동산을 운영하는 부부는 그들이 살고 있는 원당동에 있어서 만큼은 누구보다 훤히 꿰고 있다. 박상길 씨는 원당1통장으로, 아내 김순애 씨는 1반 부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상길 통
“누구든지 잘못된 것을 잘못됐다고 말할 수 있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누군가가 나서서 지적하고 고치려고 하지 않으면 사회 곳곳이 무너지기 마련이죠.”송악읍 중흥리에 위치한 중흥파출소에서 10년 넘게 근무하고 있는 박종만 소장은 일에 대한 자부심과 책임감이 대단하다. 밤을 새며 근무를 해야 할 때는 힘들지만 경찰로서 잘못된 점을 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