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지시 줄다리기 축제의 절정, 4월 14일 축제의 대미를 장식한 줄다리기 본행사 현장을 취재했다. 수천명의 시민과 관광객이 '의여차'를 외치며 줄나가기, 줄결합, 줄다리기에 참여하는 모습을 비롯해 40톤에 육박하는 거대한 줄과 수많은 인파가 하나 되는 순간, 장관을 이룬 축제현장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고대면 슬항리 출신의 김규환 시인은 현재 당진시내에 거주하고 있지만, 고향집에 서재를 마련하고 매일같이 방문하면서 시를 쓰거나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공주사범대 국어교육학을 전공한 그는 지난 1968년 5월 교사가 됐다. 전북 남원을 비롯해 당진상고·당진여고 등에서 국어교사로 근무하고, 당진정보고와 합덕여중·고에서 교장을 지냈다. 이후 당진교육지원청과 공주교육지원청 교육장을 맡았다가 2009년에 42년 간의 교직생활을 마치고 퇴임한 후 여유로운 농촌생활을 즐기고 있다. 김 시인은 “6세부터 할아버지로부터 천자문을 배웠다”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해 보관하고 있는 옛 사진이 많다. 지금도 밀레산악회 회장을 맡아 한 달에 두 번씩 등산을 가는데, 그때마다 찍은 사진들을 모두 인화해 보관하고 있다. 평소엔 나이든 것을 못 느끼는데, 사진을 볼 때면 세월이 많이 흘렀다는 게 새삼스럽게 다가온다.요즘엔 등산을 하거나 놀러 다니는 게 재밌다. 3년 전에는 환갑으로, 올해는 결혼 40주년을 맞아 아내와 외국도 다녀왔다. 또 산악회를 통해 전국 산을 오가고, 마을 사람들과 함께 나들이도 다녀온다. 1. 힘들었던 3년 간의 복무 시절첫 번째 사진은 군대 가기 전 젊었을
부곡공단이 지반침하현상으로 건물이 기울고, 바닥 갈라져 안전에 심각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지난 6일에는 도로에 싱크홀이 발생해 경찰과 소방대가 출동했다. 부곡공단 해안도로의 싱크홀 발생 현장을 취재했다.
(사)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의 당진지회가 오는 10월 설립을 앞두고 지난 3일 당진교육지원청 대회의실에서 당진준비위원회(위원장 배정화, 이하 참교육학부모회 당진준비위)를 발대했다. 배정화 준비위원장의 인터뷰를 통해 참교육학부모회 당진지회의 설립 배경과 활동계획을 들어본다.
순성면 아찬리에서 나고 자란 오영환 순성면농촌지도자회장은 아찬리 새마을지도자를 시작으로 아찬리 이장, 순성면농업경영인회장, 순성면개발위원장 등을 역임하고 현재 순성면농촌지도자회장과 순성한우회장, 순성면축제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특히 오 회장은 올해 순성면축제위원장으로 선출돼, 오는 13일과 14일에 개최되는 순성매화벚꽃축제를 앞두고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오 회장은 “‘축제 날짜에 맞춰 벚꽃이 만개해야 할텐데 시기가 잘 맞을지 걱정이 많다”며 “벚꽃이 이미 졌거나 혹은 피지 않았을 때, 그리고 궂은 날씨에 축제가 이뤄진 경우가
카페 휴에서 바리스타로 근무하며 새로운 노년을 살아가고 있는 김종례 씨는 어렸을 적부터 책을 좋아했다. 하지만 학창시절이었던 1960년대엔 책을 구할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았다. 서점 하나 없었기에 학교에서 주는 책이 전부였단다. 하지만 동네 언니와 오빠들에게 책을 빌려 읽었을 정도로 책을 좋아했다.결혼하기 전까지는 밤을 새워가며 책을 읽었다는 김 씨는 결혼 후 육아와 집안일에 바빠 책과 멀어지기도 했다.“재밌는 책을 읽으면 다음 장이 너무 궁금해요. 그렇게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면 시간이 금방 지나가 있더라고요.”하지만 늦은 나
경기도 양평에서 태어난 구미선 에코생협 당진점장은 인천에서 생활하다, 10년 전 남편의 직장 이전으로 당진을 찾았다. 이후 지인의 소개로 에코생협 당진점에서 2년 간 근무하게 된 그는 1년 전 점장을 맡아 에코생협 당진점을 총괄 운영하고 있다.에코생협에서 활동가로 근무하면서부터 건강한 먹거리의 필요성과 장점을 알게 된 그는 먹거리에 대한 인식이 변했다고 말했다. 구 점장은 “일반 마트와 달리 에코생협은 조합원 출자를 통해 설립·운영되는 비영리법인”이라며 “친환경적이고 건강한 먹거리를 합리적인 가격에 판매하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이
최근 유튜브 1인 제작자로 나서…제작만 꼬박 10시간생각의 근육을 튼튼하게 해주는 ‘하브루타’ 대화법서야중학교 임성실 수석교사가 최근 원동력을 얻고 있는 것은 ‘데일리리포트’다. 몇 시에 일어나 식사 시간은 얼마나 걸렸는지, 독서는 몇 분 동안 했는지, 오전 중 몇 걸음을 걸었는지 등 자신의 모든 것을 기록한다. 함께 집중의 정도를 수치화해 표시하고, 하루의 마지막에는 응원의 말도 남긴다. 단순한 듯 보이지만 많은 변화를 이끌었다. 생각보다 밥을 빨리 먹는다는 것, 또 낭비하는 시간이 많다는 것 등 버려지고 잘못 사용되
내가 군 복무한 곳은 중부전선 최북단인 6.25 한국전쟁 당시 격전지 백마고지다. 현재 백마고지는 일명 열쇠부대인, 보병 제5사단인의 주둔 관할구역이다. 5사단은 내 젊은 시절 추억이 가득한 곳이다. 우리 사단은 “동작 그만!”이라는 말에 떨어지던 낙엽도 멈춘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군기가 강했던 곳이다. 초소에서 북한 군인들이 운동하는 모습까지 보일 정도로 북한과 인접했다. 비무장지대를 앞에 두고 철책을 지키는 업무기 때문에 군기가 강할 수밖에 없었다. 사진을 들춰보니 그때의 추억이 떠올랐다. 다시 한 번 부대를 가보고 싶지만 쉽지
3년 전부터 이삭토스트 당진시장점을 운영하고 있는 신창재 대표는 천안 출신이다. 그는 지난 1981년 연고도 없는 당진을 찾아, 20년 간 대림·효성 등 오토바이 부품 대리점을 운영했다. 당시 당진 전역에 오토바이 부품을 납품하기도 했다고. 신 대표는 “당진에 온 지 벌써 40년이나 됐다”며 “이제는 ‘당진’이 고향이라고 말할 정도”라고 전했다.배움의 열정이 큰 그는 2000년 대 초반부터 노인복지에 관심을 가지면서 요양보호사, 웃음치료사, 레크리에이션 강사, 노인상담사 등의 자격증을 취득했다. 당시에는 관심 하나로 공부를 시작했지
송악읍 고대리에 위치한 고대감리교회에서 담임목사를 맡고 있는 성일용 목사는 송산면 유곡리에서 나고 자랐다. 그는 약 10년 간 공직생활을 하다, 결혼 후 30대 초반, 다소 늦은 나이에 신학을 배우며 목회활동을 시작했다.그는 믿음으로 신앙생활과 함께 신학을 공부해오다, 신평면 남산리에 위치한 남산감리교회를 시작으로 아산을 거쳐, 당진감리교회 부목사로 활동해왔다. 현재는 고대감리교회에서 담임목사를 맡아 목회활동을 이어오고 있다.한편 성 목사는 1997년 당진시대에 종교칼럼 필진으로, 글을 쓰면서 당진시대와 인연이 닿았다. 당시 그는
이옥자 사랑울타리 심리상담연구소 소장은 미술을 전공하고 10여 년 간 미술학원을 운영했다. 하지만 지금은 사랑울타리 심리상담연구소를 운영하며 아이들을 만난다.그의 삶의 변화에는 늘 질문이 있다.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 지, 또 그 과정에서 어떻게 해야 가정을 잘 유지하고,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지…. 질문은 또 다른 질문으로 이어졌고, 그 답을 찾아가며 삶을 그려냈다.질문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옥자 소장이 추천한 책은 다. 질문을 하기 위해서는 관심을 가져야 하고, 그 안에서는 애정과 사랑이 동반
1-1. 1-2. 약혼 하고 떠난 월남전이 사진은 월남전에 참전했던 24세 때의 모습이다. 당시 고사포가 내 주특기였다. 이것만 4년을 맡았다. 송산면 송석리 출신의 나는 1967년 7월, 전역을 두 달 앞두고 월남전에 참전했다. 베트남 가기 전 약혼을 하고, 휴가 차 귀국했을 때 결혼했다. 그 후 1969년 11월 15일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때 겪은 전쟁으로 인한 후유증이 평생을 따라다니고 있다. 참전했을 때 하늘에서 비행기가 오가며 물을 이슬비마냥 뿌렸다. 우리는 시원하기도 하고 덕분에 모기도 안 물린다며 일부러 맞곤 했다.
950년 2월 황해도 옹진에서 태어난 김동준 씨는 태어난 지 4개월 만에 엄마 등에 업혀 고대면 슬항리로 피난을 왔다. 그리고 7살 때 송산면 가곡리로 이주해 학창시절을 보내고, 가곡어촌계장으로 활동하는 등 오랫동안 어업에 종사해 왔다. 하지만 성구미포구가 송산일반산업단지에 포함돼 앞바다가 매립되면서 지난 2002년 그는 가족들과 함께 순성면 본리로 이전했다. 순성에서 아내와 함께 고구마 농사를 짓고 메기 양식업을 하고 있는 그는 “아직까지 배 한 척을 보관하고 있을 정도로 바다를 잊지 못했지만, 막상 고구마 농사를 지어보니 농사가
대호지면 적서리 출신의 차정남 당진상록수감리교회 원로목사는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느지막하게 신학을 배웠다. 그리고 영광감리교회(대호지)를 개척하고, 옥호감리교회(순성)와 중흥감리교회(송악), 동부감리교회(강원도 홍천)를 거쳐 당진상록수감리교회(송악)에서 25년 간 목회활동을 했다. 그리고 7년 전, 45년 간의 목회활동을 마치고 현재 읍내동에 거주하며 원로목사로 활동하고 있다.차 목사가 당진시대와 인연을 맺은 것은 11년 전이다. 교회로 배달된 당진시대를 읽기 시작해 은퇴한 이후에도 계속해서 당진시대를 구독하고 있다. 당진시대
최익순 다비치건강놀이심리협동조합 대표의 얼굴엔 항상 꽃이 피어있다. 그만큼 언제나 웃음으로 사람을 대하며 긍정 에너지를 전한다. 하지만 최 대표도 내성적이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을 두려워했던 때도 있었다. 남들 앞에 서면 쭈뼛대기 일쑤고 남의 시선이 자꾸만 의식됐다고.소심한 그를 변화 시킨 것은 ‘책’이었다. 최 대표는 “이 행동을 고치고 싶어 고민하다 책을 읽기 시작했고, 독서에 흥미를 가지며 1년에 책 100권을 읽기도 했다”고 말했다.“책을 통해 간접적으로 많은 경험을 하게 되더라고요. 그때 한참 독서의 매력에 빠져서
석문면 장고항2리 출신의 유문식 새마을지도자 석문면협의회장은 2009년부터 장고항2리 새마을지도자로 봉사하다, 지난해 1월 새마을지도자 석문면협의회장을 맡게 됐다. 지역을 위해 봉사를 해온 그는 10년 째 새마을에 몸담고 있으며, 지역을 위한 다양한 사업들을 추진하고자 노력하고 있다.유 회장은 새마을 활동과 함께 현재 석문면 개발위원회 간사와 석문면주민자치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으며, ‘서해수산’이라는 수산물유통업체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 지역일하랴 사업하랴 몸이 두개라도 모자랄지경이지만 자신으로 인해 누군가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
어느덧 내년이면 아흔이다. 시간이 참 빠른 것 같다. 나는 송산면 유곡리 출신으로 사업 실패로 잠시 힘들었던 때가 있었다. 그러다 서울 신림동에 있는 패션회사에 55세에 취직했다. 어려웠던 때가 있었기에 회사생활을 정말 열심히 했다. 늘 아침 일찍 출근해 늦은 저녁에 퇴근했다. 나는 이 회사에서 70세 가까이 일했다. 회사에서는 다닐 수 있을 만큼 끝까지 다니라고 했지만, 갑자기 아파진 무릎 때문에 일을 그만뒀다. 그 후에 다시 고향으로 내려와 터를 잡았다. 1. 건강도 챙기
이정애 사랑샘미술심리센터 센터장은 심리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놀이와 미술, 상담 등을 통해 문제해결을 돕는 사랑샘미술심리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그는 사랑샘미술심리센터를 운영하기 전, 10년 동안 아이들을 대상으로 미술을 가르쳤다. 미술교육과 함께 틈틈이 재능기부로 교육 봉사를 이온 그는 종종 그림을 통해 불안정한 심리 상태를 나타냈던 아이들을 만나곤 했다.어떻게 하면 이들을 도울 수 있을까 고민했지만, 교육이 아닌 치료에 있어서는 한계를 느낀 그는 미술심리치료를 본격적으로 배워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심리적으로 불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