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 지은 따끈한 밥에 짭짤하게 간이 밴 꺼먹지를 고소한 들기름에 볶아 한 숟가락 가득 입에 넣으면 ‘밥도둑’ 간장게장도 부럽지 않다. 밥 한공기가 뚝딱 사라진다. 무청을 소금에 절여 만드는 당진의 대표적인 향토음식 꺼먹지는 당진사람들의 ‘소울푸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음식, 그 이상의 의미다.이름마저 고향의 푸근한 향기가 느껴지는 꺼먹지 요리로 최근 많은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고 있는 농가맛집 아미여울이 지난해 11월 순성면 성북리에 문을 열었다. 아미여울에서는 꺼먹지라는 향토음식을 재해석해 젊은층의 입맛까지 사로잡는 것은 물론
당진시민들에게 새해 인사를 부탁한다.기해년 새해가 밝은 지 어느 덧 20여 일이 지났다. 올 한해 시민 여러분 모두 건강과 행복이 늘 함께하며 소망을 이루는 새해가 되길 기원한다. 설 명절이 얼마 남지 않았다. 가족·친지·이웃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길 바란다.내년 총선에 나온다는 이야기가 지역정가에 나돌고 있다. 가능성 있나?꿈은 있었으나 출마 의사를 접었다. 재선시장으로서 책무를 다 하는 것이 당진시민과 지지자들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한다. 당진시장으로 시정 운영에 전념해 당진시 발전을 위해 일하겠다.지방선거 이후 일부 지방일간지
합덕읍 운산리에 위치한 합덕제재소는 8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한 자리를 지켜왔다.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함께 지나온 제재소는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거쳐 지금은 아들이 운영하고 있다. 세월의 흐름으로 과거 나무를 켜던 제재소에서 현재는 건축자재 도소매 전문점으로 업종의 폭이 넓어졌지만 과거 나무를 켜던 제재소 기계들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80년 역사 이어온 합덕제재소정확한 설립연도를 모를 정도로 합덕제재소의 역사는 오래됐다. 합덕제재소를 2대째 운영했던 김병수 전 대표는 “부친 때부터 합덕제재소를 운영했다”며 “최소 80년 이상의 역
느린 듯, 고요한 듯, 그러나 절제된 흥이 은근한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화려하고 자극적인 댄스에 익숙해진 요즘 사람들에게 한국무용의 매력은 마치 어느 시인의 노래처럼 오래 보아야, 자세히 보아야 그 아름다움을 알 수 있다. 왕비의 복식을 하고 나라의 태평성대를 기원했던 춤 태평무는 궁궐에서 예인들이 임금 앞에서 추던 춤으로, 백수경 씨는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태평무 이수자다. 인간문화재의 제자가 되다수경 씨가 무용을 접한 건 7살 때다. 유치원을 다니면서 취미로 발레를 배웠다. 그러다 초등학교 5학년생이 됐을 때, 바로 집 앞에
충남 아산에서 태어난 오우택 작가는 학창 시절을 서울에서 보냈다. 서울에서 초·중학교를 다닌 그는 화가의 꿈을 가지고 예고에 입학했다. 학교에서 서양화를 전공하면서 그만의 색감과 구도를 인정받기도 했다고.군 제대 후 그는 풍운의 뜻을 품고 동양화를 전공했던 친구와 함께 미술학원을 차렸다. 하지만 학원의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2년 만에 운영을 접어야만 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버지까지 쓰러지면서 미술과는 먼 생활을 해야만 했다.아버지를 잃은 그는 가업인 농산물 중개업을 이어받았다. 그러나 예술을 공부하던 그가 빠르게 셈을 해야 하
할아버지에 이어 아버지, 그리고 다시 아들에게로 이어진 피는 진했다. 읍내동에서 삼대한의원을 운영하고 있는 한기선 원장은 그의 조부와 부친에 이어 의술을 펼치고 있다. 조부에서 시작해 선친에게로삼대한의원은 한기선 원장의 할아버지 故 한경남 씨부터 시작됐다. 조부 한 씨는 당시 홍성·예산·서산·당진 등 서해안 지역을 다니던 한 의생에게서 한의학을 공부했다. 의생이 잠들면 그의 보따리에서 책을 꺼내 필사하며 공부했단다. 당시에는 스승이 제자를 곁에 두고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가르치고 훈련시키는 도제식 교육이 이뤄지던 터라 의생 밑에서
“살려 달라”생사의 기로에 선 문자가 도착했다. 문자를 받은 박석렬 석문면주민자치위원장은 친구의 집으로 단숨에 달려갔다. 쉬어지지 않는 숨을 겨우 몰아쉬며 친구가 죽어가고 있었다. 사람 하나 겨우 누울 작은 고시원 방 안에서 그는 왜 죽기 직전까지 갔을까. 그는 왜 제대로 된 병원 한 번을 못가고 병을 키웠을까.축구 선수가 꿈이었던 아이석문면 삼봉4리에 사는 김태준 씨는 지그는 단 한 번도 동네를 떠나 본 적 없다. 삼봉초와 석문중, 호서고를 졸업한 그는 운동하는 것을 좋아해 가슴 한 편에 축구 선수 꿈을 키우며 유년기를 보냈다.
가을 녘 황금물결이 넘실대는 합덕읍 원신흥리. 바라만 봐도 마음이 넉넉해지는 풍경이다. 28살 청년농업인 박덕영 씨는 이곳에서 아버지를 따라 모를 심고, 물을 대고, 거름을 주고, 벼를 수확하며 농사의 기쁨을 맛보며 자랐다. 농사일이 쉽지만은 않지만 벼 가마가 하나 둘 쌓여갈 때면, 수확의 기쁨에 고됐던 수고는 금세 잊는단다. 아직 배울 게 많은 어린 청년이지만 영락없는 농부의 마음을 가졌다. 대를 이어 농사짓는 승계농박덕영 씨는 대를 이어 벼농사를 짓는 승계농이다. 아버지의 아버지, 그 아버지까지 원신흥리에 터를 잡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나의 자동차 디자인이 하나씩 완성될 때마다 너무 행복합니다. 내 머릿속에는 수만 대의 새로운 자동차들이 돌아다녀요. 이 자동차들이 실제 도로를 달리는 모습을 상상하며 나는 오늘도 나의 멋진 자동차를 하얀 도화지 위로 옮겨봅니다. 자동차 디자이너의 꿈을 응원해주세요.”-현지호 자동차 디자인 전시 도록에서- 자동차 디자인 사랑이 영재를 만들다학교에서 돌아온 현지호 군의 일과는 집안에 진열된 수백 대의 자동차 장난감 앞에서 시작된다. 250대 가량 진열된 자동차 모형을 갖고 놀기도 하고,
고래가 드나들었다는 바닷가 마을은 삽교호방조제가 건설된 이후 너른 우강평야로 변했다. 지평선 너머까지 황금빛 물결이 넘실거리는 이곳에서 40여 년간 농사를 지어온 이남일(62) 씨는 최근 아들 이승수(29) 씨와 함께 루다영농조합법인을 설립하고, 도시 소비자들을 사로잡을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쌀 소비가 줄어 판매에 어려움을 겪는 요즘, 우강에서 생산된 맛좋은 쌀은 서울 잠실에 위치한 제1호 도시방앗간에서 즉석 도정돼 소비자들의 식탁 위에 오른다. 이남일 씨가 우강에서 농사를 지어 쌀을 진공포장해 서울로 올려보내면, 잠실에서 쌀카페
박정석(대호지면 조금리·32세) 씨는 고등학교 3년 내내 후보 선수로 벤치에 앉아있었다. 대회에 나갈 주전 선수가 없자 그제야 후보에서 주전이 됐지만 그는 선수로 인정받지 못했다. 실업팀에 있을 때는 스트레스로 극한의 상황까지 치닫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수많은 시련에도 끈기로 모래판을 지켰고 끈기는 결국 그를 천하장사로 만들었다. 늦게 시작한 운동대호지면 조금리에서 태어난 박정석 씨는 또래 학생들 보다 늦게 씨름에 입문했다. 체격이 크고 좋은 박 씨가 조금초등학교에 다닐 당시에도 씨름
행복한가정만들기운동본부(본부장 고영석)에 따뜻한 마음이 담긴 단호박이 전달됐다. 신평면 거산리에 거주 하고 있는 장철순(34) 씨가 어머니와 함께 수확한 120만 원 상당의 신품종 단호박을 세 차례에 걸쳐 행복한가정만들기운동본부에 전달했다. 후원에 참여한 장 씨는 “앞으로도 계속해 선행을 이어가겠다”고 소감을 전했다.
주위의 응원…자신감 UP“노인이 일할 수 있는 기회 많아지길”70~80대 노인들도 일거리를 찾는 시대다. ‘경로당에서 60~70세는 청년’이라는 농담이 나올 정도로 법적 기준으로는 노인들이지만, 건강하고 소득도 창출하며 삶의 질 또한 높일 수 있는 일을 하길 원한다.인생 2모작 ‘바리스타’오효근(82)·김종례(75)·전상연(75) 씨도 희고 고왔던 얼굴에 주름이 늘고, 까만 머리카락에 하얀 서리가 내려앉았지만 체력과 의지가 있기에 일을 하기로 결심했다. 이들은 7년 전 당진시를 통해 노인들이 일할 수 있는 곳들을 찾아,
청년들은 불안하다. 연일 청년실업률이 역대 최악이라는 뉴스를 보며 ‘나는 과연 취업할 수 있을까’ 불안하기만 하다. 그런데 여기 “괜찮다. 하고 싶은 걸 하라”고 말하는 스물네 살 청년이 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철부지 청년의 치기 어린 소리라고 하기엔 그의 눈빛과 목소리엔 확신이 넘친다. 스타스테크 양승찬 대표이사는 7년 전 영재학교에서 불가사리를 연구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군복무 당시 군대동기 2명과 함께 지난해 스타스테크를 창업했다. 이들은 군인 신분으로 아이디어 창업경진대회인 ‘도전! K-스타트업 2017’ 대회의 국방리그에
일주일에 3일은 멀다 하고 토끼 같은 손자들이 할머니를 찾는다. 주말이면 부르지 않아도 아들 가족들이 찾아와 시끌벅적해지곤 한다. 다복하면서도 행복한 삶이다. 하지만 그 역시 삶과 죽음이라는 생사의 기로에 서기도 했다. 삶의 무게가 버거울 때는 지나가는 버스를 타고 삽교천에 빠져 죽고 싶었던 적도 있었단다. 비 온 뒤 땅이 굳는다 했던가. 지금은 누구보다 행복하다. 특별한 것도, 대단한 삶을 살고 있는 것도 아니지만 이제야 비로소 제 삶을 살고 있는 것 같단다.생·사의 갈림길신평면 남산리에서 살고 있는 손영자 씨(67)는 23세에
이선영 “4년 후 행보…아직은 결정 못해”안임숙 “북텔러 양성과정 운영하고파” 정의당 소속으로 처음 충남도의회에 입성한 이선영 의원과 당진시여성단체협의회장을 맡고 있는 안임숙 회장을 만났다. 이선영 도의원에게 충남인권조례를 묻고 안임숙 회장으로부터 당진의 여성친화도시 현 주소에 대해 들었다. 전체 내용은 어플 ‘팟빵’에서 당진시대를 검색하면 만나볼 수 있다. 진보정당의 첫 도의회 입성으로 주목을 끌기도 했는데, 당선 이후 어떻게 지내는가?이선영 의원 : 정신없이 지냈다. 정치를 해 왔던 것이 아니기 때문에
소리가 아닌 시각으로 소통한다. 들을 수는 없지만 함께할 수 있다. 농아인들을 위한 작은 움직임이 지역사회를 조금씩 변화시켜 나가고 있다.수많은 행사가 지역에서 열리지만 장애인들을 위한 문은 좁았다. 특히 듣지 못하는 농아인들은 당진시의 정책과 사업에서 의도치 않게 배재돼 왔다. 사람들의 말을 들을 수 없는 건, 마치 글을 배우지 못해 소리가 아니고서는 이해할 수 없는 ‘까막눈’과 같은 것이었지만, 다수의 청인들은 알지 못했다. 농아인들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했다.그러다 어느 순간 당진시가 주최하는 행사, 그리고 당진시의회 시정질문에
“25~30km 지점에 들어서면 숨이 넘어갈 것처럼 정말 힘들어요. 그땐 스쳐지나가는 풍경들을 보면서, 마음 속에 담아 두었던 얘기들을 혼잣말로 내뱉으며 계속 달리죠. 살아오면서 정말 힘들었던 순간들, 그 시간을 참고 버텨온 인생을 생각하면 어느 순간 또 힘이 생겨요. 그렇게 35km 지점을 지나면 다시 또 달릴만해져요. 인생도 비슷한 것 같아요. 죽을 것 같던 순간들도 꾹 참고 계속 달리다보면 살만해지는 때가 오더라고요.”큰 교통사고에 사업실패까지수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는 당진버스터미널. 당진에 도착한 사람의 설렘과 당진을 떠나는
아미산 기슭을 넘어 불어오는 맑은 바람, 투명한 햇살, 일렁거리는 들녘…. 눈이 내리면 눈이 내리는 대로,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큰 창 너머로 보이는 모든 순간이 감사할 따름이다. 전국 곳곳을 다녔지만 지금, 여기 당진이 가장 좋단다. “성북리가 가장 좋더라”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최종소·김경희 씨 부부는 지난 2014년 10월 당진에 터를 잡았다. 연고도 없고, 전혀 생각치도 않은 동네였다. 아내 김경희 씨와 곧잘 다니곤 했던 최종소 씨는 면천은행나무도 보고, 면천에서 유명하다는 콩국수집에 가기 위해 당진을 찾았
해외여행을 한 번이라도 다녀와 본 사람이라면,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게 얼마나 답답하고 불편한 것인지 알 것이다. 손짓발짓도 한 두 번이지, 마음이 급해지면 알던 단어도 생각이 나질 않는 게 외국어다. 어쩌다 결혼이주여성들을 만날 때면, 서툴지만 한국어를 하는 모습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서 말한 이유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 한국어는 말할 것도 없고 각종 자격증, 초·중·고 검정고시를 연달아 합격한 결혼이주여성이 있다. 사회복지학을 전공해 졸업과 동시에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한 장가경 씨를 만났다.한국에서 평생 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