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을 찍고 기록하는 것을 좋아해 오랜시간 동안 블로그를 운영해오고 있다. 나는 구룡동이 고향이며, 25년 째 자동차 손해보험 판매 일을 하고 있다. 어느 날 아내와 함께 경찰서 내 구내식당에서 일하다가 억울하게 높은 형량을 받는 사람들을 보면서 도움을 주고자 보험일을 시작하게 됐다. 첫 번째 사진은 1994년도에 난지섬에서 유람선 사업을 시작하며 찍은 사진이다. 그때 배 이름이 ‘유토피아’였는데, 유토피아의 진수식을 축하해주기 위해 많은 지인이 자리했다. 배를 타면서 세상을 보는 시선이 넓어졌다. 또한 배를 타고 여
나(하상우 씨)는 고대면 슬항리 출신이고 아내(이환숙 씨)는 우두리 출신으로 결혼한 지 어언 50년이 됐다. 서울에서 30년 동안 우유 장사부터 시작해 식당 주방장, 식당 운영과 아파트 청소까지 여러 일을 하다가 7년 전에 다시 고향을 찾았다. 요즘은 그라운드골프를 하는 낙으로 살고 있다. 첫 번째 사진은 내가 18살쯤 친구들과 찍은 사진이다. 지금의 수치과가 있는 자리에 허름한 사진관이 있었는데 친구들과 추억을 남기고자 그곳에서 사진을 찍었다. 옛날에는 사진관에서 모자 등 소품을 빌려줬다. 해군 모자를 쓴 친구가 하
남편 나이 28세, 내 나이 24세에 결혼했다. 우리는 10대 때 만나서 서로를 향한 마음이 변치 않은 채 50년 간 살고 있다. 옛날 사진이 많아 간혹 앨범을 들여다본다. 10대 때 사진이 많은데 서울에 살던 고모들이 카메라를 가져와 자주 찍어줬다. 옛날 사진을 보면 당시 생각이 나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 번진다. 남편과 나는 각각 면천면 성하리 이장으로 일했기 때문에 활동하던 친목회가 많았다. 친목회에서 해외여행을 자주 갔던 터라 여행 사진들이 많다. 첫 번째 사진은 친오빠들과 찍은 사진이다. 나는 9남매 중 다섯 번째로 태어
나는 면천면 성상1리 노인회장을 맡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경로당에서 노인회원들을 만나지 못해 너무 아쉽다. 마치 옥살이를 하고 있는 기분이다. 한편 우리집에는 앨범과 액자가 많다. 차곡차곡 사진을 모아뒀더니 양이 상당하다. 첫 번째 사진은 아내와 나의 20대 때의 사진이다. 오른쪽 사진은 군 복무 중 찍은 사진이다. 지금은 복무기간이 18개월이지만 내가 군생활을 했을 때에는 무려 54개월이었다. 지금은 백발의 할아버지이지만 소싯적에는 이목구비가 뚜렷해 인기가 있었다. 왼쪽 사진은 23세이었던 아내(박계순)의 모습이다. 아내는
오래된 사진들이 많았는데 지금 남아 있는 사진은 얼마 되지 않는다. 이번 기회에 젊었을 적 내 모습과 장성한 아들들의 어린 시절 모습을 보니 새삼 세월의 흐름이 느껴진다. 첫 번째 사진은 22살 무렵 논산훈련소에서 조교로 활동했을 때 찍은 사진이다.그 시절 군대에는 사진사가 순회하며 군인들을 위해 사진을 찍어주곤 했다. 나도 사진사가 내무반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줬다. 이 사진은 손바닥만한 크기의 작은 사진인데 최근 며느리가 이 사진을 크게 확대해 선물해줬다. 두 번째 사진은 아내가 고산초등학교를 졸업할 때 찍은 사진이다.고대면 옥
옛 사진에 내 삶의 변천사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사진을 보니 67년 평생 을 어떻게 살아왔는지가 보인다. 그동안 어렵고 힘들었던 일도 참 많았는데 잘 견디며 살아온 것 같다. 첫 번째 사진은 당진상고를 다닐 적 에 학교 운동장에서 친구와 찍은 사진이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찍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진 속 친구(왼쪽)는 고등학생 때 가장 친했던 친구로 현재 대전에 살고 있다. 친구와는 연락이 끊겼다가 최근에야 연락이 닿았다.당진상고를 졸업한 대부분의 친구들은 은행에 취직했다. 나 역시 은행에서 잠깐 일한 적이 있지
사진 찍는 걸 좋아하지 않지만 찾아보니 사진이 꽤 많았다. 특히 젊은 시절에 찍은 흑백사진이 눈에 띄었다. 사진 속 앳된 얼굴을 보면 ‘나에게도 이런 때가 있었구나’ 싶다. 젊었을 때 고생을 많이 했기 때문에 여생은 몸 편히 사는 것이 소원이었다. 그러나 양쪽 무릎을 수술했을 정도로 관절이 좋지 않다. 남은 인생만큼은 건강히 살고 싶다. 자녀들 역시 늘 건강하길 바란다. 첫 번째 사진은 남편(김만석)이 당진농업고등학교를 다녔을 적에 친구들과 찍은 사진이다.남편은 대덕리 출신으로 당진초, 당진중, 당진농고를 다녔다. 초
평소 사진을 많이 찍는 편이다. 특히 산 타는 것을 좋아해 산 사진이 많다. 옛날 과거사진을 잘 모아뒀지만, 결혼사진은 쑥스러워 소개하기 어렵다. 나는 앞으로 여생을 아내(김기택)가 하는 일을 잘 외조하며 살고자 한다. 또한 취미생활을 재밌게 하면서 건강하게 사는 것이 목표다. 첫 번째 사진은 경기도 포천에서 통신병으로 근무했을 때 찍은 사진이다.나는 1977년 1월부터 1979년 10월까지 군 생활을 했다. 이 사진은 25~26세 때 전우들과 찍은 사진이다. 이들과 연락이 끊긴 지 오래됐다. 군 생활 중 유격훈련에 열심히 참여했던
오래된 앨범에 추억들이 차곡차곡 담겨있다. 여러 사진들 중 20대 때 찍은 사진이 가장 많다. 옛날 사진을 보면 ‘그때 내 얼굴 어디 갔나’ 싶다. 젊은 사람들을 보면 나의 젊은시절이 생각나 그 시절이 그립기도 하다. 서울 토박이인 나는 순성면 중방2리가 고향인 남편을 만나 결혼했다. 결혼 후 서울에서 생활하다 남편에게 암이 발견되면서 40년 전 남편의 고향인 당진에 왔다. 남편은 오랜 투병 끝에 작년 5월 위암으로 먼저 세상을 떠났다. 첫 번째 사진은 돌에 찍은 사진이다. 올해로 82세가 된 나는 서울 노량진에서 나고 자랐다. 유
몸은 마음이 만든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인생을 즐기면서 긍정적으로 살고 싶다. 첫 번째 사진은 학창시절에 찍은 나(1-1)와 남편(1-2)의 사진이다. 나는 예산에서 5남매 중 장녀로 태어났다. 내가 태어나고 나서 아버지 일이 잘 풀려 가족들이 ‘복덩이’라고 불렀다. 나는 유복한 집안에서 자랐지만 잔병치레를 많이 했다. 당시 40세밖에 못 산다고 했는데, 현재 내 나이 87살이다. 남편 이현구는 신평면 초대리가 고향이다. 송악초·송악중·당진상고를 나왔다. 17세에 6.25전쟁이 일어나 참전하느라 20세에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두
올해로 89세가 됐다. 하지만 나이에 연연하지 않고 건강이 허락하는 날까지 열심히 살며 여생을 즐기고 싶다. 또한 천주교 신자로서 욕심 없이 건강하게 살고 싶다. 첫 번째 사진은 아버지(故 박용원) 회갑 때 찍은 가족사진이다.아버지는 면사무소 농업기수로 근무하다, 1945년 8월15일 해방 후 읍면단위 지방자치제가 실시됐던 당시 면의원에 당선됐다. 아버지는 교육열이 높으셨다. 그래서 아버지께서는 합덕읍 창정리, 도곡리, 묵성리, 재호지리 등에 거주하는 학생들을 위해 합도초등학교를 설립했다.
신평서정마을관리 사회적협동조합 이선용 초대이사장이 거산2리 이장을 지냈던 아버지 故 이철홍 씨와 당시 마을 임원들이 사진을 수집해 놓은 앨범을 최근에 발견했다. 먼지가 수북하게 쌓인 앨범을 넘기자, 흑백사진으로 남겨진 옛날의 거산2리의 모습이 나왔다. 특히 새마을 운동이 활발히 이뤄졌던 당시의 모습에 이선용 이사장은 옛 추억에 잠기기도 했다.2000년부터 2004년까지 이장직을 맡았던 이선용 이사장은 “사진의 모습과 달리 현재 신평면 거산2리에는 아파트가 들어섰고, 신평면 인구도 증가했다”며 “하지만 점점 삭막해지고 있다”고 안타까
어릴 적 사진들이 꽤 많다. 사진을 자주 찍었던 편은 아니었는데 앨범에 잘 모아뒀다. 요즘은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는다. 농사 지을 때나 여행 중일 때 SNS에 사진을 찍어 올리기도 한다. 나는 현재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고향에 내려와 지역사회에서 주민자치회, 이장협의회, 농민회, 성당 등에서 다양하게 활동하고 있다. 여러 활동을 통해 봉사하는 기쁨을 느끼고 있다. 앞으로도 지역을 위해 봉사하면서 살고 싶다. 나 혼자가 아닌 더불어 함께 즐겁게 살고 싶다. 첫 번째 사진은 패션 브랜드인 캘빈클라인(CK)에서 일했을 때 찍은 사
얼마 전 어버이날을 맞아 고향집에 다녀왔다. 집에는 어머니가 모아둔 사진들이 많았다. 지금은 스마트폰 카메라의 화질이 좋아 여행을 가거나 사람들을 만나면 사진을 쉽게 찍을 수 있지만 어렸을 때에는 필름카메라를 빌리려면 시내에 나가야 하는 등 절차가 복잡해 사진을 찍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첫 번째 사진은 초등학교 3학년이었을 때 둘째 누나와 소풍 가서 찍은 사진이다. 나는 누나와 3살 차이가 나기 때문에 초등학교를 같이 다녔다. 당시 홍성에서는 초롱산으로 소풍을 많이 가곤 했다. 현재 둘째 누나는 수원에 살고
오랜만에 옛 사진을 꺼내보니 감회가 새롭다. 어릴 적 사진 대부분이 밴드부 활동을 했을 때 찍은 사진들이었다. 중학생 때 북을 연주하면서 음악에 빠진 나는 청년시절에도 음악활동을 하면서 살았다. 나이가 든 지금은 손이 굳어 옛날처럼 음악을 하지는 못한다. 이제는 내가 12살부터 살던 곳인 원도심의 발전을 위해 일하고자 한다. 당진원시가지상가번영회장을 맡고 있는 만큼 원도심의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첫 번째 사진은 어릴 적 할아버지와 함께 찍은 사진이다.원당동에서 태어난 나는 부유한 가정에서 자랐다. 특히 할아버지는 장손인
충북 청주에서 태어난 나(이광영)는 경기도 오산시에서 40여 년 간 살다가 지난해 7월 당진에 정착했다. 한솔제지에서 오랜 시간 동안 근무한 나는 정년퇴직을 한 후 아내와 귀촌하기 위해 서산, 태안 등을 알아보다 우연히 아미산을 보고 ‘산 아래에 살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그래서 순성면 성북2리에 정착키로 결정했다. 우리 부부는 이곳에서 마늘, 양파, 쪽파, 강낭콩 등 다양한 농산물을 조금씩 재배하며 농촌생활을 하고 있다. 올해부터는 성북2리 새마을지도자로 활동하고 있다. 김칠성 이장 추천으로 활동을 하게 됐는데, 지도자 활동
옛날 사진을 보면 그때가 생생하게 기억난다. 나는 어릴 적 사진뿐만 아니라 초·중·고등학교 졸업장과 통지표도 보관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추억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지금껏 보관을 잘 해왔다. 40여 년 동안 교직에서 아이들을 가르쳐왔다.퇴임하고 난 후에는 지역민들을 위해 봉사하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노인대학장으로 정미면 노인들을 위해 일하고 있다. 마을에서도 내가 젊은 편에 속하기 때문에 내게 도움을 요청하면 일을 돕곤 한다. 앞으로도 지역사회에서 다양한 봉사를 펼치고 싶다. 또한 순간순간을 즐겁고 보람있게 사는
사진들이 너무 많아 고를 수가 없을 정도다. 옛날에는 사진을 많이 찍었는데 요즘에는 사진 찍을 일이 거의 없어 아쉽다. 코로나19로 인해 밖에 잘 안나가기 때문인 것 같다.나는 올해 여든이 됐다. 여생을 건강하게 아내와 놀러 다니며 살고 싶다. 단체로 해외·국내 여행을 많이 다니곤 했는데 아내와 단 둘이 다니는 여행이 가장 즐겁다. 시간 제한 없이 편히 쉬면서 순간을 즐길 수 있어 좋다. 노인들에게도 부부끼리 여행을 다녀야 한다고 말한다. 첫 번째 사진은 1956년 내가 중학교 입학할 때 찍은 사진이다.나는 우강면 내경1리 토박이로
옛날 사진을 찾아보니 그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다 떠오른다.사진 찍는 것을 좋아해 더 어렸을 때의 사진도 많은데, 회사 기숙사 생활할 적에 화재가 난 적이 있어 그때 모두 없어졌다. 여수 고향집에서 찍은 사진도 있는데 아쉽다. 오랜만에 옛 사진을 보면서 이야기하니 즐겁다.첫 번째 사진은 첫 직장에서 만난 친구 명숙이와 찍은 사진이다.나는 18세에 제일모직의 신사복을 만드는 공장에서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사진 속 왼쪽이 나이고, 오른쪽이 명숙이다. 명숙이는 현재 울산에서 거주하고 있으며, 자주 연락을 주고 받는 친구이다. 우리는 일
나는 오늘이 ‘내 생애 마지막 날’이라는 생각으로 산다. 내게 주어진 하루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나이를 먹으면서는 욕심을 버리고 주위사람들에게 베풀면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앞으로도 지금과 같은 마음가짐으로 살고자 한다. 첫 번째 사진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주산을 배우고 있는 나와 친구들의 모습이다. 나는 순성초등학교를 졸업했다. 당시에는 1반부터 3반까지 한 반에 57명 정도의 학생들이 있었다. 현재 순성초등학교 전체 학생 수는 100명이라고 들었다. 졸업생으로서 안타까울 뿐이다. 두 번째 사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