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는 망각이라는 묘약이 있어 삶에 활력소가 된다고들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추억을 망각해 버리는 일은 없는 것 같다. 추억이란 끊임없이 기억해내고 싶은 일들이라서 인가보다. 이런 면에서 보면 추억을 담아두는 방법 중에 일기나 사진 등이 있을 수 있다. 첫번째 사진은 돌이 지나고 찍은 사진이라고 어머니께 들었다. 뒤에 과자상자가 보이는데 당시에
사이클선수가 꿈이었던 젊은 농부 이강훈(39)씨는 요즘 같은 농번기에 정신없이 지내고 있다. 첫 번째 사진은 1981년 합덕중학교 시절 소년체전에 충남대표로 참가했을 때 사진이다. 사이클자전거 대신한 일반자전거를 개조해 만든 자전거였지만 머리 속에는 엄복동 선생과 신대철 선배를 그리며 달리던 때다. 자전거 두 바퀴에 꿈을 실었던 때가 그립다. 두 번째 사진
첫번째 사진은 1986년에 전통혼례로 결혼식을 치르던 때의 사진이다. 가족들과 친지들이 모여 축하해주던 때가 어제처럼 기억 속에서 맴돈다. 두번째 사진은 서울에 사는 조카들이 방학을 이용해 시골에 내려왔을 때 사진이다. 지금은 모두 장성해버린 조카들의 옛 모습이 정겹기만 하다. 내고향 정미면 신시리 야산에는 지금도 그때처럼 대나무가 많다. 세번째 사진은 큰
세월은 유수와 같다고 했던가! 우리들에게 ‘멋있는 선생님’으로 통했던 강원식 선생님. 지금은 꼬부랑 할아버지가 되어 계신 모습을 보며 그 말을 실감케 한다. 첫 번째 사진은 초등학교 4학년 마중리 자모산으로 소풍 갔을 때 강원식 선생님, 남기호(오른쪽)·남민성(가운데) 친구와 함께 찍은 사진. 두 번째 사진은 교복의 마지막 세대였던 내가 친구 정섭(오른쪽)
첫번째 사진은 합덕농고(현재 합덕산업고) 축산과 2학년 때 4-H 경연대회에서 우승했을 당시에 친구들과 폼 잡고 찍은 사진이다. 그 당시 4-H 활동은 활발했으며 합덕농고는 4-H 활동의 본산이었다. 오른쪽에서 세번째가 나다. 사모관대에 족두리 쓰고 찍은 두 번째 사진은 76년 3월20일 사랑하는 아내 정복영(54)을 맞이하던 날이다. 그 당시에는 지금의
첫번째 사진은 초등학교 6학년 수학여행 때 수덕사에서 찍은 사진이다. 멋쩍게 서 있는 모습이 재미있긴 하지만 그 당시에 나름대로 신경써서 차려입은 모습이 다. 뒤에 있는 만공탑은 지금도 여전한데 그 앞에 서 있는 나는 이미 중년의 나이가 되었다. 두번째 사진은 82년도 고등학교 3학년 때다. 점심시간에 친구가 사진기를 가져와 나의 단짝인 이안용(인천 거주)
지금은 사라져버린 이동식 사진관이다. 배경그림 앞의 의자에 앉아 사진을 찍으면 마치 그림 속에 일부라도 된 느낌을 주는 사진관. 70년대는 이런 이동식 사진관이 유행했었다. 지금은 미혼으로 남아있는 육남매 중의 세 사람이다. 좌로부터 셋째누님, 나, 그리고 막내누나. 두번째 사진은 나의 군 시절이다. 미군 정문에서 찍은 군기가 빠짝 든(?) 공군 헌병 일등
벌써 서른 셋이나 되었지만 아직도 총각인 나. 다른 사람들이 보면 노총각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사진속의 형(보선, 37)과 누나(준희, 35)도 아직 미혼이다. 부모님의 걱정을 언제쯤 덜어드리려나..?첫번째 사진은 내가 유치원 다닐 때 찍은 사진이다. 부모님이 찍어주셨는데 왜 나만 먼산을 바라보고 있는지.. 이 정도면 셋 중 누가 나인지 모르는 사람이 없겠지.두번째 사진에 있는 여인은 내 애인이 아니다. 간혹 애인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척 봐도 닮지 않았는가? 지금은 아·태재단에서 일하고 있는 누나의 석사과정 졸업식 사진이다.
느지막히 결혼을 하고 어느새 딸 하나를 둔 가장이 됐다. 아내(정재화, 33)와 함께 단란하게 꾸려가는 가정. 이제 어느 정도 사회적인 안정을 이룰 나이이기에 더욱 과거가 생각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두번째 사진은 82년도에 서울에서 큰형의 졸업식 때 찍은 사진이다. 내 졸업식도 아닌데 아버지 따라가서 꽃다발 들고 사진 찍으니 꼭 내 졸업식이 된 듯한 기분
첫번째 사진은 내가 다섯살때 동네에 돌아다니던 사진사 아저씨가 찍어준 사진이다. 당시에는 사진관이 많지도 않았고 사진기조차 귀하던 시절이었다. 옷과 총은 물론 저 배경까지도 사진사 아저씨가 가지고 다니던 소품이다. 울며불며 부모님 졸라 찍은 사진. 그때 기억이 선명하다. 아래사진은 선배들의 졸업식날 친구들과 같이 찾아가 찍은 사진이다. 선배들 앞에서 공연(
우리나라의 남자라면 대부분 경험하는 군대. 이제 군대 이야기는 술자리의 빠질 수 없는 안주감이지만 또한 여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나의 군대시절을 소개한다. 첫번째 사진은 입대한 지 얼마되지 않은 내가 훈련을 받는 모습이다. 훈련소에서 400명중 200명이나 전투경찰로 뽑아가는 바람에 엉겁결에 배치된 부대지만 그때 받은 훈련을 생각하면 아직
새마을지도자협의회장을 지내고 삼일회(구룡리 청년모임) 회장을 맡고 있는 지금. 돌이켜보면 정신없이 지나온 세월 중에 남는 것은 역시 사진 뿐이다. 첫번째 사진은 우리 삼형제의 어렸을 적 사진. 이 사진을 찍은지 벌써 36년이나 지났다. 큰형(낙운, 58), 둘째 형(낙진, 56)과 어색하게 찍은 사진이다. 큰 형의 검은 뿔테안경이 유난히 기억에 남는다. 두
60여년을 살아오는 동안 수많은 괴로움이 있었지만 6년전 아들의 교통사고만큼 큰 아픔은 없었다. 평생을 지역을 위해 봉사한 나로써는 아들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주변의 도움에 감사할 따름이다. 소와 같이 찍은 첫번째 사진은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매우 오래된 사진이다. 군데군데 찍혀 있는 검은 점들이 세월의 무게를 알려준다. 두번째 사진의 내 모습은 지금봐
가난 때문에 삶이 정말 힘들었던 시절. 그 시절이 비록 좋은 기억만 주지는 않았지만 나는 늘 밝은 마음을 잃지 않았다. 위의 사진은 내가 18살 때 장미가 만발한 어느 집 정원에서 찍은 사진. 빛바랜 흑백사진으로 남아있는 나의 꽃다운 10대 때 모습이다. 맨 오른쪽 사진은 남편(최천원, 63)과의 결혼식 사진이다. 내가 22살 때였으니 벌써 32년 전의 일
4살 때 쯤이었을 것이다. 큰 맘 먹고 스튜디오에 가서 어머니(전옥분), 형(양상용, 왼쪽)과 함께 가족사진을 찍었다. 푹신한 털모자를 쓰고 떨어뜨릴세라 양 손에 껌을 꼭 쥐고 있는 내 모습이 그 시절을 가물가물 떠올리게 한다. 몇 장 없는 가족사진이지만 아버지는 직장이 인천이어서 함께하지 못했다. 아래 사진은 내가 5살 때 쯤 할아버지, 할머니, 형과 함
5살 쯤 되었을까? 첫번째 사진은 지금의 향교 근처에서 찍은 사진이다. 소품으로 호랑이 모형을 들고 다니며 사진을 찍어주던 사진사가 있었다. 소문에는 그 사진사가 호랑이 안에 수상한 물건을 숨기고 다니는 간첩이라는 말이 떠돌기도 했다. 그 소문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용감히 호랑이 위에 올라선 나, 그러나 지금 봐도 가지런히 잘린 바가지 머리가 좀 쑥쓰럽기는
한 사람의 아내로서, 네 아이의 엄마로서, 그리고 큰 딸로서 벌써 50년이라는 세월이 훌쩍 흘러버렸다. 나의 첫째 딸과 아들은 결혼해 귀여운 손자. 손녀를 내게 안겨주었고, 아직 결혼하지 않은 두 딸은 늘 내 곁에서 친구 같은 존재로 함께 하고 있다. 맨 위 사진은 나의 사랑스런 손녀들이다. 올해로 돌이 지난 꼬맹이 채림이와 초등학교 2학년 해림이. 가족들
4남매를 낳고 키우는 동안 고생도 많이 했지만 지금은 이 아이들이 어느새 한 아이의 부모가 되어 나에게 버젓이 손주를 품에 안겨주었다. 왼쪽 큰 사진은 12년전 큰 딸(심현선), 막내딸(심현진)과 함께 찍은 사진이다. 시집 가지 전부터 살림꾼이었던 큰 딸이 제일 먼저 외손주를 안겨주었다. 애교 만점 막내딸은 지금 외국에 있기 때문에 보고 싶을 때마다 사진첩
첫번째 사진 : 60년대 후반, 보릿고개를 넘기가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는 것보다 힘들었던 시절이었다. 한창 혈기왕성 했던 21살 때 군대에 입대했다. 해어지고 바래서 만지기조차 조심스런 45년 전 이 사진은 논산 훈련소에서 훈련소 동기 손봉세, 장두순과 함께 찍은 사진이다. 두번째 사진 : 영화 ‘장군의 아들’의 한 장면같은 이 사진은 19살 때 찍은 사
우체국에 근무한 지도 벌써 21년째다. 처음 시작했을 때만 해도 편지를 받는 사람의 기대에 찬 얼굴을 보면 내 마음까지 즐거웠었다. 그러나 지금은 손전화와 인터넷 메일로 인해 우표가 붙은 편지를 받는 기쁨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이 사라진 것 같다. 첫번째 사진은 11년 전, 벗꽃 흐드러지게 핀 날 우체국 동료들(왼쪽부터 최영, 이수한, 본인, 김성진, 구정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