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사진은 59회 면천초등학교 동창들과 아미산에서 찍은 사진이다. 나(첫째 줄 우측)를 기준으로 시계 방향으로 박인준, 오수동, 박노근, 백용기의 어린시절 모습이 보인다. 용기는 지금도 나와 함께 면천에서 거주 중이지만 다른 세 친구는 연락이 닿지 않고 있다. 언제나 그립고 보고 싶은 친구들이다. 두 번째 사진은 1986년도 아내(김상돈)와의 약혼식
아내와 함께 충남부동산을 운영하며 나는 원당1통 통장으로, 아내는 원당1통 1반 부녀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아내와 결혼해 3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원당동의 옛 모습이 담긴 사진들을 돌아보며 30년이라는 세월이 무색해질만큼 빨리도 흘러갔다는 생각이 든다. 첫 번째 사진(남편 박상길)은 새마을지도자와 부녀회장들이 꽃길을 조성사업을 하
첫 번째 사진은 중학교 3학년 때 조모(권재영)의 고희연을 마치고 가족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다.구룡리 757번지에 위치한 본가 마당에서 가족들과 조모의 고희를 축하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아쉽게도 중학교 당시 찍은 사진이 하나 밖에 남지 않아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사진이다. 나는 7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2대 독자로 집안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고 특히 조모의 관심을 듬뿍 받았다. 두 번째 사진은 1990년 까발레리아 루스티카나 오페라 창단공연에서 찍은 사진이다. 대전에서 열린 창단공연에는 전 이봉학 대전시장을 비롯해 전 목
정말 오랜만에 앨범을 보며 추억을 떠올렸다. 이런 때도 있었구나 싶어 감회가 새롭다. 가끔은 앨범도 보며 추억을 떠올리는 여유도 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게 아쉽기만 하다. 옛날에는 소박하고 작은 것에 만족하며 살던 시기였는데 지금은 큰 것에도 만족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가끔은 시간이 날 때마다 옛 사진을 봐야겠더라. 첫 번째 사진은 도비도 연수원으로 가족끼리 야유회를 갔을 때 찍은 사진이다. 유난히 가족 여행을 자주 다녔는데 딸인 은선이는 당시 10살이었고, 아들인 현종이가 8살이었다. 어디론가 놀러갈 때마다 유난히 좋
오래 전 화재로 사진의 대부분을 잃었다. 그래서인지 옛날을 추억하게 하는 통로가 줄어든 기분이다. 사진이란 것이 참 신기하다. 있을 땐 안 보다가도 없어지니 섭섭하고 허전하니 말이다. 첫 번째 사진은 결혼하고 아이들과 찍은 가족사진이다. 시누이와 시어머니도 함께 찍었는데 벌써 30여 년 전이다. 당시 7살이던 큰 아들 운주는 지금 43살이다. 시간이 참 빨리도 지났다.결혼 후 남편과 새마을 청소년 학교를 운영했다. 당시에는 중·고등학교를 못 나온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들에게 한 글자라도 더 가르치고 싶어 학교를 열었다. 학교운영을 그
몇 년 동안 앨범을 펼쳐보지 않다가 다시금 펼쳐보게 됐다. 사진을 보며 새록새록 옛 추억이 떠올랐다. 지금은 핸드폰으로도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시대인지라 필름사진은 구닥다리 같을 지도 모르지만, 필름사진에는 옛 정서가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 사진은 본당초등학교 졸업식 때 사진이다. 양 쪽에 계신 분은 나의 부모님이다. 내가 9남매의 막내라 부모님과 나이차가 많이 나기 때문에 사진을 처음 보는 사람들은 자칫 할아버지나 할머니와 같이 찍었다고 오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아마 지금은 모교가 폐교돼서 아쉬움도 많이 남지만, 초등학
얼마 전 이사를 했다. 이사를 하면서 앨범을 모두 상자안에 넣어 놓고는 찾지를 않다가 급하게 앨범을 꺼내게 됐다. 처녀 적 사진은 하나도 못 찾고 남편과 만나 결혼한 이후의 사진만 나왔다. 젊었을 때 사진도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많이 아쉽다, 첫 번째 사진은 남편과의 결혼식 때 찍은 사진이다. 지인의 소개로 남편을 만나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 전이나 지금이나 남편은 항상 성실한 사람이다. 나도 그런 남편의 모습에 끌린 듯하다. 두 번째 사진은 용인자연농원으로 놀러갔을 때 사진이다. 가족들이 모두 함께 갔던 나들이였다. 우리 가족뿐
정말 오랜만이다. 옛 사진을 꺼내보며 추억에 잠겼다. 그리운 추억들이 영화 속 필름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첫 번째 사진은 아들 찬형의 대학원 졸업식 사진이다. 아내가 두살박이 손녀딸을 안고 며느리는 사진을 찍었다.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아들은 직장에 다녀가며 졸업증을 땄다. 항상 노력하며 하고자 하는 것을 이룬 아들이 자랑스럽다. 두 번째 사진은 면천면 재무계장에서 퇴임하며 찍은 사진이다. 공직 생활을 27년간 하면서 당진시의 여러 지역을 거쳤다. IMF로 경제가 어렵던 시기에 공직자의 정년이 60세에서 57세로 줄었다. 무려
한 동안 묵혀두고 찾지 않던 옛 사진을 찾다보니 별의별 사진이 다 나왔다. 오랜만에 추억을 떠올리니 즐겁다.첫 번째 사진은 조카의 결혼식을 치른후 가족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다. 서울 숲 공원에서 딸들과 사위들, 손자, 손녀들이 한자리에 모여 촬영했다. 남편(이홍근)은 촬영하느라 사진에 나오지 못했다.두 번째 사진은 적십자 100주년 행사 때 찍은 사진이다.
사진을 찾으면서 한참을 잊고 있던 지난 날을 다시금 돌아보았다. 친구들과의 추억, 가족들과의 추억, 동료들과의 추억을 떠올리니 감회가 새로웠다.첫 번째 사진은 26세 때 지인들과 중국에 갔을 때 사진이다. 재래시장이나 백화점을 돌아보며 사업을 구상하기 위해 갔다. 당시 중국은 공산주의 국가였기에 치안이나 경제상황 등 여러 가지 여건이 맞지 않아 사업을 포기
첫 번째 사진은 초등학교 때 대호방조제로 소풍을 갔을 때의 사진이다. 당시는 대호방조제가 건설되기 전이었다. 지금은 방조제만 쪽은 모두 다 논으로 바뀌었다. 그전엔 바다에서 친구들과 수영도 하고 고기도 잡으며 놀았는데 이렇게 사라져버리니 아쉽기만 하다.두 번째 사진은 3학년 때 교련시간 중 친구들과 찍은 사진(왼쪽)이다. 당시 교과과정 중엔 교련시간이란 게
첫 번째 사진은 당진상고(현 당진정보고) 졸업 사진이다. 함께 자취하며 수학했던 친구(사진 왼쪽)와 같이 찍은 사진으로 당진상고의 초창기 모습을 담고 있다. 그 당시에는 학교가 기와로 되어 있었다. 현재 변화한 모교의 모습에 격세지감을 느낀다. 두 번째 사진은 군 복무 시절 찍은 것이다. 나는 공수 특전단에 소속되어 있었다. 사진은 성남 K-16 비행장에서
첫 번째 사진은 예산농고 1학년 재학시절의 모습이다.(하단 오른쪽에서 두 번째) 흑백사진밖에 없던 시절 아주 오래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사진 속 앳된 얼굴의 친구들이 어느 새 중년을 훌쩍 넘겼다.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지금도 연락을 주고 받는 죽마고우들이다. 두 번째 사진은 신혼 때 아내와 셋방 앞에서 찍은 사진이다. 아내와 여행도 많이 다녔다. 당시 포니Ⅰ이란 차종이 처음 나왔는데 타고 다니던 오토바이를 팔고 돈을 보태 그 차를 샀다. 아내와 전국여행도 다니고 즐겁게 살았다. 세 번째 사진은 큰 딸 호진의 초등학교 졸업식 사진이
첫 번째 사진은 남편(차은영)과의 약혼식 자리다. 1982년에 친정에서 진행된 약혼식에 상다리가 부러질 듯 많은 음식들이 보인다. 당시 귀했던 병에 든 퀸사이다와 환타도 눈에 띈다. 우리는 곧 결혼식을 올렸고 행복예식장에서 식을 치렀다. 우리가 결혼한 후 행복예식장은 없어졌고 그 맞은편에 수협이 자리잡았다. 두 번째 사진은 어버이날을 맞아 친정 어머니(고
첫 번째 사진은 송악읍이 면일 당시 총무계장으로 활동하던 때 찍은 사진(왼쪽 끝)으로 기지시줄다리기 큰 줄 제작과정에서 찍은 사진이다. 내 뒤편으로는 약국 회춘당이 눈에 들어온다. 기지시줄다리기는 많은 발전을 거듭해 왔다. 이제는 유네스코 지정을 앞두고 있어 지역을 비롯해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문화제로 거듭나려 하고 있다. 송악을 고향으로 살아온 내게는 자랑
첫 번째 사진은 2003년 창작 동화오페라 “인어공주”에 출연했을때의 사진이다. 천안 백석대학교 작곡과교수이자 나의 중앙대학교 선배인 정덕기 교수의 작품으로 경기문화재단에서 무대제작지원금으로 창작되었다. 이 오페라에서 나는 용왕역을 맡아서 열연했다. 공연이 끝나고 출연진과 당시 경기도립팝스오케스트라 지휘자였던 최선용 선생과 함께 기념촬
앞만 보며 달리다 보니 잊었던 사진던 사진들을 통해 ‘내게도 이런 시간이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지나간 시간을 다시 돌릴 수 없기에 내게는 작은 추억 하나하나가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첫 번째 사진은 부모님(부 한춘수, 모 강은수)과 8남매들의 사진이다. 용현리가 고향인 나는(사진 오른쪽 가운데) 군청 산림과에 근무 하던 아버지
첫 번째 사진은 송악고등학교 2회 졸업식에서 친구 고재진과 함께 찍은 사진이다. 겨울 동안 쌓인 눈이 녹아 비포장 길이 모두 진흙탕으로 변하던 시절이다. 요즘은 당진 지역 어느 학교든 깔끔한 포장도로가 마련돼 비나 눈이 오더라도 편하게 등교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진흙탕 길이라도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당시에는 지금의 졸업식처럼 교복찢기를 비롯
장애를 앓기 시작한 것은 한순간이었다. 대학교 3학년 때 친구들과 술을 마시던 중 속이 좋지 않아 구토를 했고 곧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병원 측에서는 내가 목디스크를 앓고 있었고 구토를 하던 중 척추 2·3번을 마비시키는 상황이 벌어졌다고 진단했다. 내 운명에 대해 탓하고 괴로워 하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힘을 낼 수 있었다.지금은 남은 인생
앨범 속에는 다시 돌아가고 싶은 추억들로 가득하다. 보고싶은 제자들과 동료들의 모습에 그리움을 느낀다. 퇴직 이후에도 당진에 정착해 살면서 많은 제자들과 만나 옛 추억을 나누고 있지만 아직도 많은 학생들과 담소를 나누지 못해 아쉽다. 첫 번째 사진은 호서고등학교 교사로 활동하던 당시의 사진이다.어느 반을 가르치는 사진인지 기억이 잘 나지 않아 사진을 꼼꼼히